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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수보다 세심 갖춰야 시절운 따르니… 본문

소설

술수보다 세심 갖춰야 시절운 따르니…

천아1234 2021. 7. 23. 16:15

‘안풍’을 누가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의 최대 이슈다. 『삼국사기』 ‘화왕계(花王戒)’의 주인공이기도 한 백두옹은 ‘안풍’을 씨앗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주문했었다. 종자를 먹어치우면 파종도, 수확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임의 시대를 불러온다.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19>


석과불식은 풍비박산의 박(剝:)괘 맨 위에 하나 남은 양효(陽爻)를 뜻한다. 궁극에 도달하면 변하는 게 세상이치. 180도 뒤집어지면 복(復:
)괘로 대전환되며 맨 위의 양효는 땅속에 씨앗으로 묻혀 자란다. 박탈 직전에 일양(一陽)이 돌아와 회복의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절기로는 동지(冬至)가 된다.
올해는 12월 21일(음력 11월 9일)이 동지다. 대선 이틀 후로 음력으로 따져 초순에 오니 애동지가 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떡을 해먹는 풍습이 있다.

박에서 복으로 바뀌는 사이에 곤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씨앗을 심기 전 땅을 고르는 절차라고 할 수 있겠다. 백두옹은 일찍이 천명했었다. 다음 대통령은 분명 대지의 어머니, 땅의 미덕을 지닌 지도자 몫이라고. 강건한 남성적 리더십보다는 온유한 여성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라고.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는 음중양(陰中陽)으로 봤다. 겉모습은 여성이지만 내면에 누구보다도 강건한 남성성을 지니고 있다며. 반대로 안철수 전 후보는 양중음(陽中陰)으로 봤다. 겉모습은 남성이지만 내면에 유순한 여성성을 품고 있기에.

그런 구도는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에서 경선레이스를 펼치던 때 잡았다. 백두옹의 예언처럼 척목(尺木)이 없어서 하늘을 날 수 없게 된 안철수가 사퇴했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 문재인 후보가 치고 들어왔다. 단일화의 감동은 없었지만 문 후보의 추격은 만만찮다. 불과 1년 전에는 대권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로서 잠룡 축에도 들지 못했었다. 그런 그가 하늘을 나는 용(龍)의 지위, 바로 아래까지 도약해서 박 후보와 다투고 있다. 한 단계만 더 오르면 바야흐로 비룡재천이다.

전쟁터에서도 자주 점 친 이순신 장군
“박근혜 후보가 여의주를 쟁취한다는 얘기잖아요. 곤덕(坤德)은 여성인 박 후보가 남성인 문 후보보다 더 많을 테니까요.”
강권 교수는 낙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곤덕이 뭔가?”
백두옹이 묻는다.

“어머니처럼 품어주고 길러주는 거지요.”
강 교수가 정확히 정리한다.
“그렇지. 그런데 민주당 측에서는 박 후보가 여성적 리더십과 별로 상관없다고 주장하잖아? 생물학적인 성(性)보다 살아온 삶의 역정이 더 중요하다며.”
백두옹이 중계방송하듯 말했다.

“그래도 여성 후보인 건 분명하죠.”
“가치 지향점과 공약의 내용도 중요하다네. 얼마나 크게 끌어안고 감싸며 소망스러운 미래로 나아가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야.”
“그러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주역은 가부간에 명쾌한 단정이 특징이잖아요. 판단은 선명할수록 실행하기에 좋으니까요. 여성후보 박근혜인가요? 남성후보 문재인인가요? 너무 답답합니다.”

선거일 코앞에서 같이 점을 쳐보자고 달랬건만 강 교수가 조급해했다. 오차범위 안에서 겨루고 있는 두 후보였다.
“문재인 후보에게는 양중음인 안철수를 어떻게 안고 키워 가느냐가 중요해. 접붙이기라고 할까? 부동층을 흡수하는 정책도 중요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예언해 화제가 된 책

 

실증주역(청계) 개정판이 참고가 될 거야. 지난여름 어떤 공약을 내거는 후보가 대권을 잡을까, 괘를 뽑아봤더니 화(火地) 진(晉:)괘 무동효(無動爻)가 나왔다지. 진괘는 전진을 뜻해. 과감한 개혁이나 전쟁 수준의 진격이거든. 움직인 효가 없으면 괘사를 보는 건데, 괘사에 ‘백성을 안락하게 하는 임금은 말(馬)에게도 은혜를 베푼다’고 했지. 후한 복지공약,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공약 등을 강력하게 내건 후보가 당선된다네(631쪽). 타당성이 있어.”

여간해서 점치기를 꺼리는 백두옹이 다른 이가 친 점을 인용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보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게 군자다. 최대한 인지(人智·human wisdom)로 헤아리고 그래도 정말 모를 때 신지(神智·divine wisdom)를 빌려야 탈이 없다. 인지란 이성적인 헤아림이고, 신지는 알 수 없는 것을 신에게 물어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합리적 경험주의자였던 공자는 좀처럼 점을 치지 않았는데 쳤다 하면 7할을 적중했다고 한다.

점은 전쟁터에서 곧잘 치게 된다. 경제현장, 선거판에서도 점이 흥행한다. 돈과 권력이 좌우되는 곳이야말로 전쟁터다. 쩐의 전쟁, 표의 전쟁!
사람 목숨이 달린 진짜 전쟁터에서 점을 친 예는 숱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전장에서 자주 점을 쳤다. 출전하면서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병사들을 독려한 장군은 죽음 곁에서 주역 점을 쳤다. 때로는 아내의 병세를 묻기도 했고 다른 장수의 성패 여부도 물었다. 1597년 5월 12일자 『난중일기』에는 수군통제사 원균을 점친 기록이 상세하다. 어려움을 뜻하는 준(屯:)괘가 재수 없는 조우를 뜻하는 구괘로 변했다. 이순신은 크게 흉하다고 판단했다. 두 달 뒤 원균은 악조건 속에서 출전해 전멸당했다.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 장군도 일본군과 싸우는 전장에서 점을 쳤다. 세 개의 엽전을 던져서 괘를 뽑곤 했다.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길흉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척전법(擲錢法)이다.

“어르신께서는 누가 대권을 거머쥘지 안 궁금하세요?”
“전혀. 누가 되더라도 걱정이 태산이야. 이번 검찰 추태에서 절감했듯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하는데 말이 대권이지 반쪽짜리 권력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 봇물 터진 복지공약들도 구체적인 재원 마련책이 없어 실천하기 어려울 거 같고.”
“집권 초기, 힘 있을 때 밀어붙여야지요 뭐. 개혁도 복지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복지는 대폭 늘릴 수밖에 없어요. 안 그러면 시민 권력이 참지 않을 걸요.”

“자넨 태평이로군.”
“국운이 좋다면서요? 제 걱정은 ‘안풍’입니다. 그처럼 거세게 불었던 ‘안풍’이 정치권에서 벌써 사라져버린 거 같습니다. 새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낡은 프레임에 갇혀서 상호비방이나 하고 말입니다. 그건 ‘안풍’에 배반하는 거고 곤덕도 아니지요.”

“그건 그래. 정치가 아직 덜 성숙했나 보지. 자랄 때는 형제간에도 싸우는 거라고. 크려고 싸운다고 하잖아? 그러다 성장하면 안 싸워.”
백두옹은 눈을 감았다. 그는 계룡산 국사봉에 올랐던 일을 떠올렸다. 역사는 제물을 필요로 한다. 역사의 제단에 부모를 바친 박 후보, 친구를 바친 문 후보는 누구보다도 아픔이 있는 이들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성숙해지는 법이다. 이른바 거듭나기를 하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그 어떤 상대라도 이해하게 된다. 죽음의 터널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면 모두가 가엾게 보인다.

“그나저나 ‘안풍’이 잦아지니까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구태가 재연되는 느낌입니다. 물러났던 이해찬 전 대표도 슬그머니 유세장에 재등장했고요.”
“유구무언!”
백두옹은 말을 아꼈다.

박근혜, 안풍·북풍·텝풍을 조심해야
바야흐로 공감과 치유의 시대다. 압축 성장은 세계가 놀란 신화를 만들었지만 우리 안에 크고 작은 상처도 남겼다. 우리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했다. 이제 그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치유해줘야 할 때다. 돌보지 못했던 성장의 그늘도 안아줘야 한다. 여야 어느 후보가 정권을 잡더라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 한쪽에서 『주역』 철학이 하나의 척도가 된 건 의미가 크다. 선거판에서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각 정당에 모사와 책사가 활개 치는 이유다. 모사와 책사는 도리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기면 그뿐이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술수를 쓰고 기꺼이 국민 밉상이 된다. 『손자병법』 『삼국지』 『후흑경』 『황제음부경』 『군주론』 모사들이 떠받드는 고전들이다.

시절은 변한다.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아마 독서법도 바뀌게 될 것이다.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병법서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책이 더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 누가 대권을 거머쥐었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얻었느냐가 중요한 때가 되었다. 과정이 결과만큼이나 중요해졌으므로 술수는 도리어 독이 될 수가 있다. 승자독식의 시대, 책략세계에서 상생의 시대, 대동세계로 시절운이 변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주역은 중정(中正)의 도리, 시중(時中)의 철학서다. 바른 도리, 때에 적합한 도리는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보다 마음이 거울처럼 깨끗한 사람이 찾기 쉽다. 세심(洗心)이야말로 주역철학의 핵심이다.

“어쨌든 박 후보는 삼풍(三風)을 조심해야 합니다.”
강 교수가 백두옹의 방을 나서며 말했다.

“삼풍이라니?”
“‘안풍’‘북풍’‘텝풍’ 이렇게 삼풍 말입니다.”
“북한이 대선에 맞춰 장거리 미사일을 남쪽으로 쏠 거라는 거? 북풍은 여권에 꼭 불리한 건 아냐. ‘안풍’은 외교·안보가 보수라 했어. ‘북풍’을 상쇄할 바람이지. 그런데 ‘텝풍’은 뭐누?”

“TV토론! 박 후보가 준비 제대로 못하면 결정타를 맞을 겁니다. 피할 수 없는 텔레비전 바람, ‘텝풍’이 더 무서울 걸요.”
강 교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바람은 얼굴이 없다. 어디든 가고 무엇에든 붙어서 요술을 부린다. 용을 따르는 구름도 바람은 능히 흩어놓을 수가 있다. 보름 남짓한 동안 서로 뒤섞여 몰아
칠 ‘삼풍’ 바람이 이번 대선의 변수다. 끝까지 알 수 없는 선거 판세가 제19대 대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