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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기려 야합하듯 편 짜면 국운이 사나울 터 본문

소설

단지 이기려 야합하듯 편 짜면 국운이 사나울 터

천아1234 2021. 7. 23. 16:08

“문재인이 대선에 바칠 제물은 아주 특별해야 합니다.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내야만 겨우 당선할까 말까니까요. 그의 당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회한의 승화! 따라서 속죄와 감사, 화목의 기능을 하는 희생제의를 찾아내야 합니다.”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 <16>

강권 교수는 먼 하늘바라기를 했다. 백두옹은 계룡산이 품은 남녀 얼굴형상을 눈길로 더듬었다.

“…이해찬·박지원의 헌 정치를 용퇴시키는 것! 김한길이 먼저 결단을 보여줬지만 노회한 모사(謀士)인 저들의 받아치기 수작을 보세요. 내분은 안 된다고 버티네요. 소가 웃을 일입니다. 문 후보에게 상당한 정치력이 있어야 용퇴시킬 수 있죠. 문제는 그들을 제물로 삼더라도 유권자의 싸늘한 마음 녹이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민주당은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으니까요. 따라서 자력으로는 절대 승리하지 못해요. 유일한 희망이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인데….”

“역시 동인(同人:)을 짓는 일이로군. 저 계룡산 산상의 남녀처럼 부부합궁하면 더 좋고. 그건 산 위에 연못이 있는 택산(澤山) 함(咸:)인데 키워드는 허수인(虛受人)이야. 마음을 비워야 사람을 오롯이 받아들여. 함(咸)은 무심지감(無心之感)이라. 감(感)에서 마음 심(心)자를 떼어냈으니 몸이 시키는 대로 짝짓는 거라. 문재인이 마음 비우고 스스로 제물이 되라는 얘기야. 출마할 때 먹었던 마음, 곧 초발심은 그럴 생각이었잖아. 지난 총선 때처럼 기득권 못 버리면 정권교체 못하는 거지. 아전인수식 계산법은 안 통해!”

백두옹이 칼로 무 자르듯 외쳤다. 복잡할 땐 단순한 게 정답이다. 그것이 주역철학의 요체다. 얽히면 자른다는 ‘오컴의 면도날’은 주역과 상통한다.
“어르신, 문 후보는 국민경선으로 당당하게 뽑힌 제1야당 후보입니다. 그 전과는 입장과 처지가 달라요.”

문 안의 안철수, 문 밖의 박근혜
“정분이 나면 입장과 처지 안 따져. 동동왕래(憧憧往來)면 붕종이사(朋從爾思)라. 정분난 사이처럼 뻔질나게 오가면 벗이 내 생각에 따르는 거거든. 강 교수, 박·문·안. 이렇게 나란히 써놓고 봐. 나는 자꾸 문 후보가 통과하는 문(門) 같고 문의 안과 밖에 안철수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있는 것 같은 상(象)이 떠올라. 문 안의 안철수, 문 밖의 박근혜! 그게 문재인의 운명 아닐까?”
백두옹의 농조에 강 교수는 푸훗, 소리 내 웃었다.

“하긴 안철수가 이미 자신을 제물로 내놓았으니까요. 그는 당선해도 고난, 낙선해도 고난의 세월이 기다립니다. 국민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니 속 편한 리더십 같지만 그게 어디 맘 편하겠어요? 내심 걱정이 태산일 겁니다.”
“10일 발표한다는 공약이 궁금하군. 제물은 크고 새로울 때, 그 가치가 있는 게야. 기존 정당 후보와 크기도 고만고만하고 신선도도 거기서 거기라면 제물 가치가 없어. 안 후보는 정책을 만들면서 강지원 후보를 조용히 찾아가 만나보면 좋겠어. 참신성은 누가 뭐래도 강지원 후보가 으뜸이니까. 강 후보를 포용하면 더 좋고.”

국사봉에 저녁 이내가 내려오고 있었다. 국사(國事)를 논하는 건 국지사(國之師)라야 가능하다. 그래서 국사봉(國師峯)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서둘러 하산했다. 국사봉 아래 향적산방(香積山房)으로 돌아온 그들은 거북이 형상의 샘에서 솟는 석간수로 목을 축였다. 달고 시원한 감로수였다. 거북바위 안에 두세 사람이 가부좌하고 명상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 백두옹과 강 교수는 10여 분쯤 좌정했다. 바위 안의 물소리에서 영성이 피어났다. 거북바위는 오른편 힘이 뻗치는 용바위와 함께 천장지비(天藏地秘)의 표식이다. 빼어난 공부터가 분명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산방에 누웠다. 백두옹은 도꾼들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나라는 산의 나라다. 산국이다. 산국에는 골골에 숱한 수행자들이 산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돈이 나오지도 않는데 저절로 들어와 수행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도 그랬고 태평한 시절에도 그랬다.

이곳에는 전설 같은 도인들의 일화가 전한다. 1861년 즈음, 조선왕조 오백년의 명운이 쇠해갈 무렵이다. 조선 후기의 도인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가 서울에서 낙향하여 인근의 띠울 마을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김항(金恒:1826~1898)이라는 시골 선비를 제자로 삼고 ‘천심월(天心月)의 그림자가 어디로 가는가, 그 행방을 찾아보라’는 숙제를 준다. 김항의 나이 서른여섯 살 때다.

김항은 밤낮으로 궁구하고 주역과 영가무도(詠歌舞蹈) 수련을 한다. 독서를 하다가 음·아·어·이·우의 오음주(五音呪)를 노래하고 흥에 겨우면 뛰고 춤추었는데 그가 도약하던 강변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정도였다. 드디어 19년 만에 비밀을 푼다. 그의 저서

 

정역에 상세하다.

이후로 눈을 뜨나 감으나 앞이 환해졌다.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가 않았고 정신이 또렷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이상한 그림이 나타났다. 주역 8괘였는데
복희괘나 문왕괘가 아니었다. 뜻 모를 괘도는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온 천지가 그 괘도로 뒤덮였다. 너무 수련에 열중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라고 여긴 그는 보약을 먹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3년을 지내고 주역 <설괘전>을 펼쳐보다가 문득 새로운 8괘도의 근거를 찾아낸다. 새 8괘도를 그리니 그것이 복희, 문왕에 이은 제3의 역학 정역 8괘도다.

괘 그림이 완성되자, 홀연히 공자(孔子)의 영상이 나타났다. 대업을 이룬 것을 칭찬한 공부자는 김항에게 ‘일부(一夫)’라는 호를 준다.
평생 공부에 매달리느라 삶은 곤궁했으나 일부의 마음은 열락으로 넘쳤다. 그래서 늘 웃었다. 100년 뒤, 신천지가 열리는 걸 미리 보았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선생은 국사봉 기슭을 가리키며 ‘여기 구멍이 뻥 뚫리고 금화도(金火道:기차)가 지나간다’며 모양과 속도까지 예언했다. 과연 그 앞으로 터널이 뚫리고 호남선이 놓였다.

선생은 그렇게 일부(一夫)가 만부(萬夫) 되는 때를 기다렸다. 말년에 무식자에 가까운 제자 덕당(德堂) 김홍현에게 도를 전했다. 암송과 수인(手印)으로. 혹세무민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는 왼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8괘를 모두 표현할 수 있었다.
덕당은 이곳 거북바위와 용바위 사이에 있는 세 칸짜리 초가에서 스승 일부의 도를 지켜냈다. 사방에서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 문인들을 뒷바라지했다.

눈이 많이 쌓인 날 새벽이었다. 공부꾼 한 사람이 소변을 보러 나갔는데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문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덕당의 영가 소리에 맞춰 추는 춤이었다. 영가는 우주의 소리로 산천초목과의 조화와 일치를 꾀한다. 덕당의 오음주에 호랑이도 감응했던 것이다.
“호랑이 춤춘다!”

공부꾼은 얼떨결에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던 호랑이는 바람소리를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덕당과 학인들이 나왔을 때는 이미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영가는 인간의 입으로 내는 자연의 소리다. 생명의 소리이고 우주의 파동이다. 그 소리에 자신의 뇌파는 물론 주변 뭇 생명들이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다. 불교의 옴마니반메훔 같은 주문이나 기독교의 신명 나는 찬송가, 무슬림의 시적인 경전 코란에도 그런 요소들이 배태돼 있다.

세 후보 대승적으로 연대해야 제대로 돼
정역은 혁명의 역학이다. 마주하는 괘가 완벽한 짝을 져서 어그러짐이 없거니와, 안에서 밖으로 보던 괘의 방향성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밖에서 안으로 읽어내야 비로소 읽힌다. 드높던 하늘이 땅보다 아래로 내려온다. 평등과 조화, 복지의 상징이다. 체(體)가 바뀌면 용(用)도 바뀐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이른바 후천개벽사상이 바로 여기서 연원한다. 복희 8괘도가 역의 생성, 문왕 8괘도가 역의 성장을 의미한다면 정역 8괘도는 완성을 의미한다.

정역은 대동세계를 맞이하는 인류의 나침반이다. 그 나침반이 이 땅에서 나왔다. 근대화 시기, 서구문명을 따라잡기에 바빴던 우리가 주체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주도할 철학적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역학 정역은 꽤 알려져 있다. 역학에 밝았던 탄허 스님도 정역을 읽었다. 하지만 전통 수련법 영가무도는 명맥이 끊긴 듯하다.
“그런데 어떻게 정역이 오늘날 세상에 알려진 건가요?”

강 교수는 그게 궁금했다.

“충남대 총장을 지낸 철학자 학산(鶴山) 이정호의 공이지. 학산은 경성제대 법문학부 출신 수재인데 배화여교 교사 시절이던 31세 때, 덕당의 제자 김경운을 만나네. 김경운은 당대 최고의 관상가로 이름이 높았었지. 학산은 이곳에 들어와 집을 짓고 맹렬히 정역을 연구했네. 이 향적산방도 그가 지은 집이야. 안장경, 이용희, 유승국, 육종철, 권영원 같은 학인들이 따라와 공부를 익혔네. 유승국 교수는 정신문화원장을 지냈지.”
“그런데 왜 대통령 선거에 정역 논리지요?”

강 교수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김지하 시인이 말하더군. 김일부의 정역 속 사상체계를 빌려 서민 대중의 삶과 전문적인 정치를 융합시키는 큰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고. 내가 말하는 정도령, 정도를 걷는 대통령도 정역적인 사유를 하는 정치인이라네. 남녀, 동서, 남북, 상하, 보수진보가 적대시할 게 아니라 상대를 필요로 하는 관계로 가야 해. 그게 정역 8괘의 핵심이야. 심하게 말하면 문재인·안철수만이 아니라 박근혜·안철수, 박근혜·문재인도 대승적으로 연대할 수 있어야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돼. 셋이 합심할 수 있으면 국운이 좋은 거고, 단지 이기기 위해 야합하듯 편을 짜면 아직 국운이 사나운 거란 말일세. 곧 남북통일도 할 건데 고만고만한 우리 대선 후보끼리 못 합칠 게 뭐야? 누가 당선되든 책임총리는 나머지 두 후보에게 맡길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