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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종자로 쓸 과실은 먹지 않는 법이니 본문

소설

무릇 종자로 쓸 과실은 먹지 않는 법이니

천아1234 2021. 7. 23. 16:11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서리를 밟게 되면 머잖아 단단한 얼음을 보게 된다. 주역 곤(坤:, 땅)괘 첫 번째 효사다. 내륙 지방에 벌써 서리가 내렸다. 곧 얼음이 얼 것이다. 대자연이 그러하듯 인간사도 기미를 보면 그 추이를 알 수 있다. 그게 주역의 원리다.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 <17>

지난여름, 백두옹은 초장부터 여성적 리더십의 도래를 천명했다. 건(乾:, 하늘)의 시대에서 곤의 시대로 천지도수가 바뀌었음에다. 한국역학 정역에서 예견한 대로다. 바야흐로 권위의 시대가 가고 포용과 치유의 시대가 왔다. 하늘이 위에서 군림하고 땅이 낮게 깔려 있는 천지(天地) 비(否:) 상태는 불통(不通)을 의미한다. 군사정권, 철권통치 아래 숨죽이고 살던 생민들의 처지와 같다. 궁색하면 변하게 된다. 180도 뒤집는 것만큼 큰 변화도 없다. 땅이 위로 올라가고 하늘이 밑으로 내려온다. 대통령 위에 국민이 있다는 뜻이다. 지천(地天) 태(泰:) 상태다. 태평세의 상징이다.

지금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하다지만 그래도 불과 반세기 전, 세끼 밥마저 제대로 못 먹던 시절과 비교하랴. 정치민주화는 이미 이뤘고 이젠 경제민주화 하자고 입을 모은다. 이후엔 사회민주화일 텐데 그 또한 사회적 합의만 되면 못할 것도 없다. 모두 곤(坤)의 시대 증후군들이다. 곤의 미덕은 어머니처럼 만물을 품고 기르는 것이다.

땅이 올라가고 하늘이 내려와야 태평세
“할아버님, 박근혜는 음중양(陰中陽), 안철수는 양중음(陽中陰)이라고 하셨죠?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
TV 뉴스를 시청하던 외손자며느리가 묻는다.
“그랬지.”
백두옹은 당도 높은 배를 씹고 오물거리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안철수 말예요. 민주당 문재인의 손을 들어주게 생겼네요. 박근혜 측에선 야합이라고 맹비난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 같아요. 문 후보는 한때, 남자 대통령론을 주장했을 만큼 남자 중의 남자인데 할아버님의 여성 리더십 예견, 틀릴 것 같군요. 할아버님 말씀대로라면 박근혜, 아니면 안철수라야 맞잖아요.”

강남스타일 주부인 외손자며느리는 거침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성격답다. 백두옹은 그게 더 편하고 좋다.
“얘야, 더 두고 보자꾸나. 네가 좋아하는 문재인은 탐욕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겠더라. 민주당과 캠프에서 요란이지 문 후보는 순수한 소년 같기만 해. 강 교수가 지지하는 안철수, 너무 쉽게 보지 마라. 권력을 그렇게 호락호락 넘겨줄 간단한 인물이 아니니까. 아마 둘 사이에 드러내지 못할 깊은 교감과 믿음이 있을 게다.”

“그래 봤자 결국은 당과 조직이 없는 안철수가 문재인 후보에게 밀릴 거라고들 하네요.”
외손자며느리는 세간에 떠도는 말을 그대로 옮겼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야.”
백두옹은 그렇게 읊조리고 눈을 감았다.
“네?”
“종자로 쓸 과실은 먹지 않는 법이라고!”
눈치 빠른 외손자며느리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 까치밥이라고 아니?”

“그럼요. 이맘때 산촌에서 감나무의 맨 꼭대기 감 몇 개를 남겨두는 거잖아요. 날짐승과도 먹을거리를 나누는 미풍양속이지요.”
“그렇지. 그런데 단순히 날짐승과 먹을거리 나누느라 꼭대기 감 몇 개를 남겨두는 게 아니란다. 주역에 박(剝:)괘가 있어. 괘 모양처럼 양효(-)가 후두두 다 떨어져나가고 맨 꼭대기 하나만 남아있는 형국이지. 그게 석과불식이야. 까치밥 형상과 같지 않니? 주역에 밝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편찬한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종자는 머리에 베고 죽는다(農夫餓死 枕厥種子)’ 했단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차마 묘판에 뿌릴 종자는 못 먹는 거지. 그거 먹으면 모조리 굶어 죽거든. 까치밥은 묘목으로 자라게 될 씨앗이야. 날짐승이 쪼아 먹고 그 씨는 땅에 떨어져 이듬해 봄날, 새싹을 틔우지. 박이 뒤집혀서 복(復:) 상태가 되는 것이야. 맨 꼭대기에 있던 씨 하나가 맨 밑으로 가서 땅속에 심어졌으므로 희망이 움트는 거라.”
“문재인 중심의 야권 단일화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외손자며느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쌜쭉한 표정이다.
“문재인은 참 선한 영혼이다. 전혀 정치적인 인물형이 아니지. 그런데 인물난을 겪던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정치판에 불려나왔어. 그는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대인이야. 민주당 어느 정치인보다 군자의 덕성을 지녔단 말이지. 그는 늘 웃으며 유세하는 거 같더구나. 그래서 얼굴빛도 세 후보 가운데서 제일 빛나.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는 뜻이지. 왜겠니?”
“처음에는 어림도 없던 정권교체 가능성이 보이니까요.”

“허허허허-.”
백두옹은 목젖을 드러내며 큰소리로 웃었다.
“정권교체는 필연이에요!”
“상대가 천하의 박근혜인데도? 절대 쉽지가 않아. 더구나 야권에서 하겠다는 개혁, 박 후보도 다 하겠다는데? 국민의 신뢰도는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더 높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정치개혁 대상은 민주당이 더 먼저라는 얘기야. 문재인 후보는 그걸 알아. 뿐더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사의 제단에 바친 목숨의 참의미도 알고. 그래서 마음을 비운 것 같아. 얼굴빛에 그게 보여.”

“그러니까 뭐예요? 민주당 중심의 단일화로는 박근혜 못 이긴다, 이거 아녜요. 때문에 그걸 잘 아는 문재인 후보가 조용히 내부 정리를 한 다음, 안철수에게 드라마틱하게 양보할 거다? 그러니까 석과불식의 ‘석과’는 안철수네요?”
외손자며느리의 두뇌회전은 빨랐다.
“그것만이 노무현 정신의 승화요, 국민적 열망의 화답이니까. 안철수 최종 후보라야 동인(同人:)괘가 성립해. 이후에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가치 중심으로 신당 창당하면 돼.”

“강 교수가 들으면 할아버님 몽상가라고 하시겠네요. 문재인이 야권 최종후보가 된다면요?”
“그럼 송(訟:)괘가 돼. 국민적 송사(訟事)가 붙게 된다는 뜻이야. 안철수 현상을 만든 국민적 열망이 회한으로 남게 되겠지. 그것은 역사적 비극이야. 안철수 현상은 문재인이 절대로 대신할 수 없는 일이거든. 운 좋게 문재인이 박근혜라는 태산을 넘어 대권을 잡더라도 가시밭길이 계속될 거야. 남북통일은커녕 남남갈등이 전방위적으로 증폭될 테니까. 한 번 호되게 데어본 우리 국민은 그런 선택, 절대 더 안 하지. 박근혜에게 표가 결집될 거야. 그래서 급진(急進)이 아닌 점진(漸進)적 개혁의 길을 선택할 거야.”
백두옹이 모처럼 괘를 제시하며 예단했다. 상황을 설명할 때는 자주 괘를 뽑았지만 미래를 예견할 때는 좀처럼 괘를 뽑지 않는 그였다. 함부로 점을 치다가 어긋나면 수치를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不恒其德 或承之羞 子曰 不占而已矣-『논어』「자로」). 공자는 항(恒:)괘 세 번째 효사를 그대로 인용했다. 『논어』를 안 읽고 주역을 배우면 점쟁이가 된다.

혁신 없는 同人 결성은 쭉정이 붙드는 셈
“정치판은 아사리판인데 당장 눈앞의 이익 놔두고 왜 멀리 보겠어요? 문재인의 속내와 별개로 민주당에서 절대 양보 안 할 거예요.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안철수보다 문재인과 상대하기를 원할 거고요.”

“그럼 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처럼 쓴잔을 마시는 거지 뭐. 원죄가 있는 민주당은 진작 호랑이 털갈이하듯 혁신해야 했어. 털갈이 없이 정권만 잡을 욕심으로 안철수를 빨아들이면 새누리당 말대로 야합이 돼. 떳떳한 동인 결성이 아니라는 얘기야. 야합, 혹은 정략결혼이랄까. 귀매(歸妹:)괘에 해당하지. 그대로 진행하면 흉해. 떳떳지 못한 정략결혼을 해서라도 얻는 게 있다면 해야겠지. 파능리(跛能履), 묘능시(能視)! 절름발이 걸음걸이, 애꾸눈이 보기지만 그렇게라도 감행하지 않으면 수가 없겠지. 그러다 어그러지면 여자는 승광무실(承筐无實: 과일 없는 빈 광주리만 이게 됨), 남자는 규양무혈(羊无血: 피 없는 양을 찌름) 짝 나고 말아. 과일 없는 빈 광주리는 씨 없는 고자(鼓子)이고, 피 없는 양은 임신할 수 없는 석녀(石女)라는 얘기야. 알맹이 없는 쭉정이만 붙든 셈이지. 주역의 표현 참 신랄하지 않니?”
백두옹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박근혜 후보가 발을 동동 구르게 됐네요. 생식기만 여자라고 놀림 받던데.”

“같은 여자이면서 너도 동감한다는 게냐? 참 못돼먹은 사람들이다. 어떻게 문명한 대한민국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그런 막말을 할 수가 있니? 박 후보는 저들에게 그렇게 취급받을 만큼 허접한 인격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누구보다도 품격 높은 인물이라는 말이다. 나는 박근혜 같은 여성 정치인이 여야를 통틀어 열 명, 백 명쯤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박 후보가 대선에서 떨어져 정계를 은퇴할까 봐 걱정이야. 미안한 얘기다만 야권에는 아직 박 후보만 한 리더십과 덕성, 아우라를 지닌 여성 정치인이 없어.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 정도가 눈에 띄긴 하지만 세를 모으는 힘은 턱없이 부족해. 흠잡기는 쉬워도 그만한 인물 내놓기는 어렵지. 못 미치면 인정하고 발바닥 땀나게 쫓아다니며 배워야지 왜 헐뜯고 폄하해? 국민들은 그런 천박한 리버럴리스트 선동가들에 질렸다는 걸 알아야 해. 교양시민의 빈곤은 우리 사회의 취약점이야. 명색이 교수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저급한 수준이라고.”
백두옹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박근혜 후보가 좀 딱하게 됐네요.”
“이제 와서 동정이냐? 미국과 중국의 국가리더십이 정해졌어.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18대 대통령 자리, 그리 쉽게 못 얻어. 이럴 땔수록 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에 충실해야 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해서 특유의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해. 국민은 절대 바보가 아냐. 표는 선거 마치고 뚜껑 열어봐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