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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산성·중성·알칼리성 가려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본문

소설

국민은 산성·중성·알칼리성 가려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천아1234 2021. 7. 23. 15:36

일러스트 박용석
혁(革:). 위는 못(澤:) 아래는 불(火:)로 가죽을 벗겨내듯 구태를 벗는 변혁의 시대를 뜻한다. 우물의 도인 정(井:) 괘 다음에 온다.
“제아무리 청량한 우물물도 세월이 지나면 때가 끼기 마련이지. 바닥에 진흙이 쌓이고 불순물이 섞이면 마실 수가 없는 것! 그대로 두면 썩어버리므로 깨끗이 쳐내야 해. 정치권에 경제민주화 열풍이 분 지금이야말로 변혁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정말 변혁해야 할 곳은 정치권인데 정치인들은 말로만 변하지 자신들은 변할 줄 모르는 것 같네. 어떤가?”
김종록의 '주역으로 푸는 대선 소설'⑦
백두옹이 흑단나무 6효 막대를 짚으며 강권 교수에게 묻는다.
“문재인 후보도 ‘국민이 혁명적 변화를 바라고 있다’고 했지요.”
강권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무음 모드로 해놓았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이쿠! 이건 큰일 났네요.”

“왜 그러는가?”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나요? 신문사에 보낼 칼럼!”
강 교수는 용수철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그때 외손자 며느리가 저녁상 차려놨다고 알려왔다.
“아무리 급해도 어디서든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닌가. 한술 뜨고 가게.”
백두옹이 강 교수를 붙들었다.
“아닙니다. 원고 쓸 때는 공복 상태가 좋습니다. 곧 다시 찾아뵙죠.”
강 교수는 눈썹이 타 들어가는 사람 행색으로 모습을 감췄다.
대한민국은 지금은 革 괘 상태
두 차례의 태풍이 잇따라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큰 바람의 위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어서 인간의 오만을 조롱하듯 천지를 할퀴었다. 정치판에도 큰 바람이 불고 있었다.
큰 바람 일어나니 구름이 높이 날리고 위엄을 온 세상에 떨치고는 고향으로 돌아온다.어디서 용맹한 장수를 얻어서 천하태평을 도모할 수 있으리오.한 고조 유방(劉邦)이 반란을 평정하고 고향 패현을 지나다 연회를 베풀며 읊은 대풍가(大風歌)다. 지금 어느 대권 후보가 대풍가를 부르고 있는가. 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 최종 후보가 거칠 것 없는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지위로 보면 건(乾:) 괘의 4효쯤 오른 상태다. 막 하늘을 날기 직전, 연못에서 뛰어오르는 광경이다. 연못 위로 구름이 지나간다. 그 구름을 타고 오르면 그야말로 비룡재천이다. 박근혜 후보는 애초 바람과 거리가 멀다. 처음부터 용의 자식으로 자란 그는 구름을 몰고 다녔다.

선거판에서 바람은 역시 야권의 몫이다. 일찌감치 불어온 돌풍을 탄 안철수. 그리고 오픈프라이머리의 최후 승자가 그 주인공이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사실상 승리를 예상해 안철수와의 단일화 방식을 두고 전략 논의에 들어갔다지만 아직 바람몰이의 진원지, 호남이 남아 있다. 정세균의 홈 그라운드인 데다 손학규도 반전을 꾀하고 있어 속단할 수 없다. 어쨌든 먼저 4효의 지위인 연못에 안착해 때를 점치고 있는 안철수와 민주통합당 최종 후보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국민의 주목을 받는 ‘역사적 만남’이니까. 쌍방이 이견대인이다. 두 사람이 뜻을 잘 합치면 천하를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아니, 그 길만이 막강한 박근혜와 어떻게 겨뤄볼 깜냥이 된다.

자연인 문재인은 평판이 좋다. 경선 과정에서도 고운 심성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을 보는 관점은 인격 문제가 아니다. 일찍이 정치로부터 도덕성을 분리해낸 마키아벨리식으로 말하자면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승한 포르투나(Fortuna:운명이자 행운)를 지녔다. 하지만 시민들의 높은 요구를 정치적으로 풀어낼 비르투(Virtu:탁월한 능력)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안철수 넘고 박근혜 이길 수 있을까
백두옹은 한밤중에 외손자 부부를 불렀다. 평택에 공장을 둔 중소기업가 외손자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박근혜 후보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던 때만 해도 속 시원해하며 관심을 좀 보이더니 박 후보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버리자 손을 털어버렸다.
“문재인 후보가 뽑히면 안철수를 넘고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백두옹은 세련된 외손자 며느리에게 물었다.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라고 치켜세웠던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님, 그는 아주 맑은 영혼의 소유자예요. 사람들이 자꾸 정치적인 능력을 주문하는데 안철수는 뭐 정치력이 있나요? 오히려 더러운 기존 정치 때가 안 묻었으니까 추대한 거라고요. 탐욕스러운 권력의지가 없는 문재인이 안철수와 서로 멋진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 거라고 봐요.”
외손자 며느리는 낙관적이다.
“자기 돈 써가면서 고생 고생한 캠프 사람들은? 죽 쒀서 × 주겠냐고? 다 한자리 해보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인데.”
외손자가 냉소적으로 뇌까렸다.
“엊그제 강 교수님 칼럼 안 읽었어요? 안철수가 제 3지대 정당을 창당하고 합당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지 않아요. 제가 정치는 잘 모르지만 적당한 지분을 준다면 양보 못할 이유가 없죠. 문재인의 부족한 점은 안철수가 채워주고 안철수의 부족한 점은 문재인이 채워주면 박근혜 충분히 상대한다고 봐요, 전. 당신도 중소기업 하니까 경제민주화 제대로 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지지해줘요.”
외손자 며느리는 샐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손학규 후보가 맘에 들어. 내 표는 내 의지에 따라 소중히 행사할 거니까 한 침대에서 잔다고 같이 찍자 강요 마!”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에요.”
“알았다. 이러다 싸우겠구나. 그만들 자자꾸나.”

백두옹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왔다. 종교와 정치문제는 깊이 대화할 거리가 못 된다. 편이 갈리고 곧잘 논쟁이 벌어지니까.
침상에 누운 백두옹은 좀처럼 눈을 붙일 수 없었다. 대선이 100여 일밖에 안 남았는데 모두 무엇을 하겠노라고만 외쳐대지,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서로 외치는 구호가 유사할 때는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검증 포인트는 후보가 살아온 역정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함께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캠프 사람들의 면면도 검증 포인트다. 산성인지 중성인지 알칼리성인지를 가려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은 국민이 한다. 리트머스는 이끼다. 이끼는 미미한 존재지만 우습게 봤다가는 여지없이 큰코다친다.

한동안 세상은 태평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고요하기조차 하다. 대선 후보들 검증할 시간이 없어 걱정이라며 언론만 요란 떨었지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이 싱겁고 차분한 나날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결전의 날은 12월 19일로 이미 정해져 있고 하루하루 임박해 왔다.
일마다 기미(幾微)가 있다. 낌새라는 거다. 지혜로운 자는 작은 기미를 알아채고 거기서 천하가 돌아갈 방향을 읽어낸다. 역(易)을 공부하는 자는 이 고요가 태풍의 눈임을 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편히 잠자기 틀렸나 보다. 백두옹은 침상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강일(剛日:뒤숭숭한 날)에는 독경(讀經)하고 유일(柔日:편안한 날)에는 독사(讀史)하라고 했던가. 이런 밤은 경전보다 역사가 맞춤하다. 백두옹은 서가에서 홍재전서(弘齋全書)를 꺼냈다. 조선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개혁군주 정조의 문집이었다. 홍재는 조선왕조 제 22대 임금 정조의 호다.
훌륭하도다. 주역 혁 괘의 상육(上六:여섯째 효)이여. 정자가 이르기를 “소인(小人)은 비록 마음속으로 감화되지는 못하나 또한 그 낯빛만은 바꾸어 윗사람의 명령에 따른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비록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변화시킬 수 없는 법이니, 요(堯)와 순(舜) 같은 임금에게 묘(苗)와 상(象)이 있었던 것은 대체로 외면만을 바꾸어서이다” 하였도다.

정조는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조선의 대표적인 정치가였다. 소론과 노론의 권력싸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왕위에 오른 영조의 손자다. 영조는 노론이 집권하게 하면서도 소론 또한 등용했으니 그 유명한 탕평책이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금난전권(상권 독점)을 폐지하는 경제 개혁, 화성 천도를 통한 정치 개혁, 노예제 혁파 등 전반적인 개혁 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노론의 저항에 부닥쳤고 의문의 죽음(1800년)을 맞는다. 만일 그의 개혁 정치가 성공했다면 훗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불행한 역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조 이후 조선의 역사는 개기일식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귀하들은 털갈이 제대로 하셨소이까?
모름지기 지금 대한민국도 혁 괘 상태다. 대저 한 나라의 최고통수권자 된 이라면 누구라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멋지게 개혁하고, 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한다. 개혁하고 싶어도 세상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끝내 실패하고야 만다. 혁 괘에서 득중한 5효는 ‘대인은 호변(虎變)한다’고 말한다. 호랑이는 용과 더불어 대인을 상징한다. 호랑이의 털갈이는 백수의 왕답게 말끔하여 문채가 난다. 하지만 참모나 고관들은 그처럼 문채 나지 못한다. 표범의 털갈이 정도이고 소인배는 기껏 얼굴빛 정도만 바꾸려 든다. 그랬다가 아니다 싶으면 불평을 쏟아내고 곧바로 돌아서버린다. 그게 민심의 본색이다. 하여, 개혁정치가 성공하기란 정말 어렵다.

혁 괘 3·4·5효는 한결같이 믿음을 쌓으라(有孚)고 말한다. 무엇보다 개혁 주체가 진실해야 한다. 호랑이 털갈이처럼 자신부터 전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호응을 얻어 성공한다. 엉겁결에 호랑이 등에 타고 달리게 된 안철수·문재인 후보, 실현 불가능한 ‘100% 대한민국 ’을 선언하고 종횡무진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백두옹은 묻는다. 귀하들은 털갈이 제대로 하셨소이까? 혹시, 그들 자신이 개혁 대상인 얼치기,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감히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말로만 외치는 건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