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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 충격예언 “백두산과 후지산 폭발 임박” 본문
<2006년 백두산 대동위령제 중 천지에 올라 상념에 잠긴 차길진씨>
“백두산 폭발이 임박했으며 일본의 후지산도 같은 화산대로서 잇달아 폭발할 것이다”
차길진 회장이 충격적인 예언을 본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차회장의 백두산 폭발 예언은 수년전부터 자주 경고해왔지만 후지산까지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산의 동이족의 성스러운 산이다. 그런데 중국은 거주민은 쫒아내고 비행장을 만드는 등 심각한 훼손을 자행했다”며 “백두산의 분노가 극에 달해 중국의 변고가 예상된다”다고 경고했다. 차회장은 그 시기는 2013년 전후로 예상했다.
또한 “일본 천황가에 처음으로 이혼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며 “차기 천황인 나루히토(徳仁) 친왕과 그 부인이자 황실 첫째 며느리 마사코(雅子) 황태자비가 그 대상”이라고 전망했다.
백두산 폭발에 대한 경고를 뒷받침하듯 지난 최근 기상청이 주최한 ‘백두산 화산 위기와 대응’ 세미나에서 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중국 화산학자들이 "4~5년 내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며 경각심을 던져주었다.
백두산이 다시 분화(噴火)할 가능성에 시선이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백두산이 인간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추정되는 화산 폭발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관련 학계에 따르면 백두산은 고려 시대인 서기 946과 947년 각각 대규모로 분화했으며, 당시 화산폭발지수(VEI)는 7.4로 인류가 역사 기록을 남긴 지난 수천년간 가장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산폭발지수는 화산 폭발의 지속시간, 분출물의 높이 및 양 등을 종합해 화산폭발의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지수 1이면 소규모, 2~3이면 중규모, 4 이상이면 대규모 폭발로 분류된다.
고려 때 백두산 분화는 일본의 역사서에도 "하얀 재가 마치 눈처럼 내렸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는데 마치 천둥소리와 같았다"는 기록으로 등장한다.
이때 나온 분출물의 양은 최근 일본 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83∼117㎦에 달한다. 지난봄 유럽에 `항공대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화산의 경우 화산폭발지수가 4였고, 화산재 분출량은 0.11㎦로 백두산의 1천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천지 내에는 크게 보면 3개의 분화구가 있는데, 이 중 2개는 946과 947년의 대폭발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산의 모습이 완성된 것은 불과 1천여년 전이라는 얘기다.
이후에도 백두산이 1014∼1019년, 1122년, 1176년, 1199∼1201년, 1217년, 1373년, 1401년, 1403년, 1405∼1406년, 1597년, 1668년, 1702년, 1903년 등에도 분화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역사 기록들이 남아 있다.
만약 백두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반경 수∼수십km 이내 지역은 초토화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현재 백두산의 꼭대기 부분 지형을 감안하면 중국측 지린(吉林)성의 피해가 클 것으로 보이나 만약 일부가 무너지거나 갈라지면 북한측 양강도 삼지연군에도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천지에 담긴 약 20억t에 달하는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면 압록강, 쑹화강, 두만강 등에 대홍수가 날 확률도 높다. 또 화산재가 편서풍을 타고 일본에 영향을 주고, 동아시아 일대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될 수도 있다.
만약 후지산이 폭발한다면 일본의 동경은 도시 기능이 마비될 것이다. 후지산이 마지막으로 폭발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인 1707년 12월 16일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화산체 남동측면에서 솟아오른 화산재 기둥이 동쪽으로 이동했으며 오후 1시까지 태양빛을 차단해 에도(현 도쿄)의 하늘이 밤같이 어두웠고 또 밤 늦도록 화산재가 쏟아져 지면에 수북이 쌓였다고 한다.
현재 후지산 동쪽에는 도쿄, 요코하마, 가와사키를 잇는 일본 최대 공업지역이 있어 후지산이 폭발할 경우 그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6년에는 미진과 소규모 분화가 이어져 '후지산 폭발'이라는 공포가 일본 열도를 휩쓸었으며 2000년 10월에는 산 정상부가 흔들리는 소규모 지진활동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2006년 일본 일본 아키히토 천황의 둘째 며느리 기코(紀子·39) 왕자빈이 남자아이를 출산하면서 일 황가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남자아이의 탄생으로 급진전을 보였던 여성천황을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황실전범' 개정 논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일본정부가 설치한 전문가회의는 지난해 말 남녀에 상관없이 장손이 황위를 계승하는 방향으로 '황실전범'을 개정할 것을 건의하는 보고서까지 채택했으나, 기코 왕자빈의 임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의가 중단됐었다.
마사코(雅子) 황태자비는 남편보다 키가 큰 그는 늘 굽이 낮은 구두를 신었다. 차분하고 지적인 외모로 역시 평민출신인 시어머니 미치코(美智子) 황후만큼이나 국민적 인기가 높았으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만약 이혼이 현실화된다면 1300여년 125대를 이어온 천황가에 커다란 오점이 될 것이다.
<김영수 기자(buscard@whoim.kr)/인터넷신문 후아이엠(www.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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