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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빠르게’ 이천 물류창고 참사, 원인은 돈이다”

천아1234 2021. 11. 1. 11:54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2020.05.06ⓒ김철수 기자

“이번 참사의 본질 원인은 돈이다”(홍순관 건설기업노조 위원장)

‘싸고 빠르게’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를 끝내려다 건설노동자 5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사비 절감’을 위해 위험하지만 값싼 우레탄 폼을 사용하고,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위험한 상황에서 동시 작업을 강행한 건설사의 책임이 크다는 취지다. 이 사건이 단순 화재사고가 아닌 예견된 인재로 불리는 이유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6일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창고 신축공사 참사 재발방지대책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달 4월 29일 오후 1시 30분경 한 익스프레스가 발주하고 (주)건우가 시공한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원청 건우와 체결한 9개 하청업체 소속 건설노동자 38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다.

기름방울 떠다니는데 옆에선 용접
“‘동시 작업’은 살인행위와 같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합동 감식이 진행 중이지만,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건설노동자들은 ‘동시 작업’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공사를 빨리 끝내기 위해 가연성 물질 취급과 화기 작업을 병행해 언제든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현장에서도 우레탄 폼 시공과 용접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우레탄 폼 시공 작업을 하면 기름방울이 공기 중에 분포된 유증기가 실내에 가득 차는데, 이때 용접이나 절단 등 불꽃이 튀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동시 작업으로 발생하는 화재를 막기 위한 제도는 있지만, 현장에서 무시되는 실정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화재위험 작업 시 가연성 물질에 대한 방호조치, 용접 불티 비산 방지조치, 인화성 가스 환기조치 등 준수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며,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각종 기술지침에서는 동시 작업을 금지하는 개념이 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2020.05.06ⓒ김철수 기자

화재 위험성을 여러 차례 경고받은 뒤 발생한 사고이기에 ‘예견된 참사’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이천 물류창고 공사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 및 확인 사항’을 보면 건우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여섯 차례 심사·확인 중 세 차례 ‘화재위험 주의’를 받았다. 이에 ‘조건부 적정’ 진단을 받은 상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은 동시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이 지금도 전국에 수없이 많다고 꼬집었다. 이승무 서울건설지부 배관용접분회장은 “이천 물류창고같이 마감을 앞둔 현장에서는 각 공정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산재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동시 작업은 화재를 눈앞에 두고 살인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시공사나 발주처가 나서지 않으면 공정 조정이 어렵다”라며 안전보건 조치에서 원청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하청업체는 서로의 공정에 대해 알 수 없으며, 위험성을 알더라도 서로의 작업을 중지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청만이 공정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하청업체의 작업을 조율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화재 원인을 발표하는 자리에 소방본부 등이 아니라 원청 건설사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양곤 노동안전 담당은 “원청 건설사는 그날 층별로 어느 회사 소속의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 당일 이뤄진 작업만 파악해도 화재 원인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2020.05.06ⓒ김철수 기자

또 하나의 화재 원인으로 이른바 판넬로 불리는 ‘샌드위치 패널’이 지목됐다. 조립식 건축물에 주로 사용되는 샌드위치 패널은 대형 화재의 주범이었다. 얇은 철판 사이에 석유화학 제품인 스티로폼 또는 우레탄 폼을 넣은 형태라서,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는 동시에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를 내뿜어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값이 싸고 시공이 간단해 공사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1990년대부터 샌드위치 패널의 유통이 빠르게 늘었다. 화재 안전성이 뛰어난 대체품들이 있지만,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위험한 샌드위치 패널이 사용되고 있다.

쌍둥이처럼 반복되는 ‘집단 사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해 기업 강력 처벌해야”
“현장 점검엔 노조 참여해야”

10년 주기로 쌍둥이처럼 똑같은 ‘집단 사망’이 발생하고 있다. 1998년 부산 냉동창고, 2008년 이천 냉동창고, 2020년 이천 물류창고 모두 ‘동시 작업’으로 인한 폭발, ‘샌드위치 패널’로 인한 유독가스 확산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무고한 건설노동자들의 죽음을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강한수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은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참사 당시 일용직 용접공을 가해자로 지목해 책임을 물었다. 건설사가 아니라 건설사가 시키는 대로 한 노동자를 범죄자로 만들었다”라며 “대신 참사를 일으킨 책임기업에 대해 고작 벌금 2천만 원으로 처벌했다”라고 질타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6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2020.05.06ⓒ김철수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책임기업을 엄벌해야 한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들은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기업은 평균 430만 원 내외의 벌금에 그치고, 실형은 1%도 구형되지 않는 현실에서 기업은 안전을 위한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재발 방지 대책의 근본적 수립을 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법 위반으로 산재 사망 발생 시 형사처벌 하한형을 둬 솜방망이 처벌을 막을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대 재해를 발생시킨 건설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 조치로 입찰을 제한하자는 방안도 제기됐다. 강 위원장은 “이번 참사의 시공사 건우의 환산재해율은 4.58%로, 전체 건설사(0.75%)에 비해 6배다. 건우는 이천에만 4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라고 꼬집었다.

노동부는 현재 건설 중인 전국 물류창고를 점검하겠다고 나섰지만, 현장 노동자의 참여가 없다면 형식적 점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화재사고의 원인인 동시 작업은 작업할 때 나타나는 문제인데, 노동부 점검이 있는 날엔 아예 작업을 자체를 하지 않는 현장이 많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노동부 점검에 노조가 참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반복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에는 항상 컵라면이 있다. 대체 이런 일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나.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와도 같다는 말이 있다. 왜 우리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죽음을 고민하며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가 온갖 노력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우리나라만 약 250명이다. 그런데 한 해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는 2400명이다. 국가는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을 구하려고 했듯 산재에 희생되는 노동자를 구해야 한다. 먹고 살려고 일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적인 일을 막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