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 9 2023. 8. 6
윤 정부 ‘건전재정’ 한다더니…재정적자 117조 역대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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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라 살림 적자 규모가 1년 전에 견줘 26조원 이상 늘었다. 국세가 전년보다 52조원이나 더 걷히는 등 ‘세수 호황’이었는데도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등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다. 적자 규모 증가 속도는 나라 경제가 불어나는 속도보다 더 가팔랐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감세 조처로 세수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는데다, 경기 불확실성도 확대되는 등 재정을 둘러싼 올해 여건도 녹록지 않은 터라 현 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정부가 4일 국무회의를 열어 심의·의결한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면,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64조6천억원이다. 한 해 전에 견줘 적자 규모가 34조1천억원 늘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전년보다 26조4천억원 불어난 역대 최대 수준인 117조원이다. 경제 규모가 불어나는 속도(경상성장률·3.8%)보다 더 가파른 적자 확대다.
이에 따라 재정 건전성을 가늠하는 3대 핵심 지표가 모두 상승했다. 국내총생산(GDP)에 견준 통합재정 적자 비율과 관리재정 적자 비율은 각각 3.0%, 5.4%로, 한 해 전보다 1%포인트 남짓 뛰었다. 국가채무비율(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백분율)도 한 해 전보다 2.7%포인트 상승한 49.6%다.
적자 규모가 크게 커진 것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한 해 동안 두차례 편성하는 등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대선 전인 지난해 2월 문재인 정부가 단행한 1차 추경은 16조6천억원, 그 이후 윤석열 정부가 한 2차 추경은 55조2천억원에 이르렀다.
재정 건전성 악화는 ‘건전 재정’을 핵심 기조로 삼고 있는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건전성 훼손을 어느 정도 감내한 뒤 올해부터는 지출 관리를 엄격히 해 점차 건전성을 확보해나갈 방침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세수 부족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지출을 줄이더라도 재정적자 확대 가능성은 커진 상황이다. 여기에다 금융 불안과 유가 재반등 가능성 등에 따라 한층 불확실해진 경기 흐름 탓에 재정이 경기를 뒷받침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해 결산 결과는 국가 재정 운용을 ‘방만 재정’ 혹은 ‘건전 재정’이라는 식으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재정 운용은 안정적 세수 확보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여가면서도 필요에 따라선 적자를 감내하면서도 지출을 확대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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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해 세입 세출 결산 결과 남은 세계잉여금(일반회계 기준)은 6조원이다. 이 중 국가재정법(90조)에 따라 지방교부세와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채무 상환에 우선 쓰고 남은 2조8천억원은 정부가 세수 부족으로 예정된 지출을 못 할 때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쓸 수 있는 여윳돈이다. 다만 기존 예산 사업의 지출을 늘리거나 새로운 사업에 쓰기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만 한다. 정희갑 기재부 재정관리국장은 “추경 편성 여부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지출 삭감이냐, 채무 늘리기냐…윤 정부, ‘세수 펑크’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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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연속 세수가 정부 예상보다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세수 결손에 따른 재정 운용 파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채무를 늘리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나서거나, 경기의 급랭을 감수하며 예정된 지출을 큰 폭으로 줄여야 하는 탓이다. 현 정부 들어 공격적으로 이뤄진 대기업·부자 감세 조처에 따른 세수 부족이 국정 운영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 이례적 수준의 세수 부족
2일 기획재정부의 ‘국세 수입 현황’과 <월간 재정동향>을 보면, 올해 들어 1·2월 두달 연속 세수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2월까지 누적 국세 수입은 54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5조7천억원이 적다.
통상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은 드물기 때문에 세수 증가폭에는 변동이 있으나 총액은 늘어난다. 실제 정부도 올해 경상성장률(물가를 반영한 경제성장률)을 4%대로 보며, 올해 세수(총수입 기준)를 한해 전보다 약 16조6천억원 더 많이 잡아 ‘2023년 예산’을 마련한 터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세수가 걷힌다면 20조~30조원이 훌쩍 넘는 대규모 세수 부족이 발생할 공산이 높다.
연중 세수 전망은 더 어둡다. 정부가 2023년 예산안을 편성할 당시인 지난해 9월 예측한 경기 흐름보다 회복이 더디고, 최근에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을 계기로 금융시장 불안도 확대된 상태다. 금융 불안과 부실 확대는 소비·투자 심리 악화로 이어져 세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예산안 편성 이후 진행된,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한 수조원대 대규모 추가 감세가 추진된 터라 세수 기반은 더 약해졌다. 아파트 매맷값 급락세는 주춤했으나 반등 기대는 일러서 거래량 회복도 단시간 내에 점치긴 어려운 환경이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정책총괄관은 “올해 세수는 2분기 이후 경기 흐름이 좌우할 것이다. 하반기에 경기가 회복된다면 1~2월 부족분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 추경과 불용의 갈림길
두자릿수 세수 부족은 윤석열 정부가 올해 ‘추경’과 ‘불용’이란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걸 뜻한다. 세수가 부족하면 예정된 지출을 강제로 줄이거나(불용), 세입 경정을 통해 채무를 늘려야(추경)만 한다. 추경은 반드시 국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두 선택지를 놓고 깊은 고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이든 감내해야 할 비용이 적지 않아서다. 추경을 통해 채무를 늘리면, ‘건전 재정’이란 현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현 정부는 전 정부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악화한 재정 건전성 회복을 줄곧 강조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임기 내 증가폭(50%→52.2%·국가재정운용계획)을 ‘2%포인트 초반’(문재인 정부는 약 15%포인트)에 묶는다고 밝힌 바 있다. 집권 2년차부터 대규모 추경을 하게 되면 이런 계획의 전면 수정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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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 재정에 집착해 불용을 선택할 땐 경기 관리 부담은 커진다. 살얼음판 같은 경기 흐름을 정부가 깨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예로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 당시 정부는 추경이 아닌 불용을 선택하면서, 그해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한해 전의 절반인 0.4%포인트(실질 기준)로 뚝 떨어지며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준 바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애초 예산 편성 때 재정지출의 성장률 기여 효과까지 고려해 지출 규모를 결정한 만큼, 강제로 지출을 줄이면 안 그래도 1.6~1.7% 수준으로 낮게 전망된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 무너진 세수 기반, 내년이 더 걱정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들어선 이후 감세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세 부담을 덜어 경제주체들의 소비·투자 여력을 키우면 세수가 다시 늘어난다는 전형적인 ‘공급 중시 경제학’ 처방에 따른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법인세율이 과표 구간별로 1%포인트씩 떨어졌고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과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대폭 낮추거나 완화했다. 기업들의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들어가는 투자비의 일정액을 세금에서 빼주는 세액공제도 확대했다. 소득세도 과표 구간 조정을 통해 세 부담을 줄였다.
이런 조처가 세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는 일찌감치 나왔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산한 감세 규모만 연평균(2023~2027년) 약 12조원에 이른다. 흔들린 기반은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과 그 이후에도 현 정부의 재정 운용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세법 개정은 내년부터 파급력이 더 커지고 중장기 세입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성격의 조처였다”며 “세금은 줄이는 건 쉬워도 다시 늘리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현 정부의 재정 운용이 집권 기간 내내 진퇴양난에 빠질 공산이 크다”고 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검은돈 추문 끝내자”… 교황, 바티칸은행 개혁 칼 뽑았다
돈세탁 의혹 조사 특별委 구성, 교황에 직보… 美로스쿨 교수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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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지어진 요새를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 바티칸 은행. 고위 성직자들은 경비병이 지키는 별도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고 내부에는 10개의 은행 업무 창구와 지하 금고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BBC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은행 개혁에 팔을 걷고 나섰다.
교황청이 운영하는 ‘바티칸 라디오’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은행의 모든 활동을 조사하고 교황에게 직접 보고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 5명을 선정했다고 보도했다. 교황 직속의 이 위원회는 이탈리아 출신의 라파엘 파리나 추기경이 위원장을 맡고 프랑스 출신의 장루이 토랑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가 주로 포진했다. 미국 출신인 하버드대 로스쿨 메리 글렌던 교수도 포함됐다. 성직자 출신이 아닌 글렌던 교수가 위원으로 선정된 것은 바티칸 은행 개혁에 대한 교황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외신은 분석했다. 글렌던 교수는 주바티칸 미국대사를 지낸 적이 있어 바티칸 내부 사정에 밝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원회는 바티칸 은행 업무 활동과 관련된 모든 문서와 자료를 열람하고 필요하면 외부 전문가를 데려와 같이 작업할 수도 있다.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는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바로 교황에게 전달된다.
교황이 바티칸 은행 개혁에 칼을 든 것은 수십 년간 바티칸 은행을 둘러싼 돈과 관련된 추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교황은 평소 교회가 청렴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종종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비유를 들며 성직자들이 돈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바티칸 은행이 주권 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바티칸 시국(市國) 안에 있어 이탈리아 당국은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바티칸 은행은 시칠리아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로 이용됐던 암브로시아노 은행이 1982년 파산할 당시 돈세탁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암브로시아노 은행의 최대 주주가 바티칸 은행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이탈리아 검찰은 바티칸 은행이 자금의 소유주와 행선지를 감추는 방법으로 부패한 정치인과 마피아의 돈세탁을 돕고 있다는 혐의로 시중은행에 있는 바티칸 은행의 자금 2300만 유로(약 343억 원)를 동결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동결 조치는 2011년 6월에 풀렸지만 수사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교황의 개혁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교황청 내 일부 기득권 집단과 그들과 연관된 부패 정치인, 마피아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 바티칸 은행 개혁을 주장했던 요한 바오로 1세 전 교황은 즉위 33일 만인 1978년 9월 28일 사망해 현재까지도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황청은 당시 사망 원인을 심근경색이라 발표했지만 개혁정책에 불만을 품은 마피아와 연관된 교회 내 세력에 의해 암살됐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바티칸 은행은 주로 신자들의 기부금과 성직자들의 급료를 관리한다. 대출은 하지 않지만 예금은 할 수 있고 송금 및 투자 업무도 한다. 보통 자산의 5%로 주식이나 채권 투자를 해 수익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