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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문단으로 이해하는 검찰과 청와대의 전쟁 (feat 추미애-윤석열-조국)

천아1234 2023. 6. 12. 18:48

길지만 읽으면 이 복잡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지만 그만큼 다양한 맥락을 넣었습니다. 검찰과 검찰개혁의 역사는 AB, 문재인과 조국 사태는 CD, 추미애와 윤석열의 전쟁은 EF, 이 싸움의 의미와 해설은 GH를 읽으면 됩니다. 

 A. 검찰개혁 논란의 역사: 어쩌다 검찰은 개짱짱 권력이 되었나?

1. 꼭 알아야 할 개념: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다

누군가의 행위를 법으로 처벌하기까지는 3단계를 거친다. 1) 수사: 범죄 혐의가 있다고 여길 경우 뭘 잘못했는지 뒤진다, 2) 기소: 벌받을 만큼 잘못한 것 같으면 재판정에 던진다, 3) 재판: 처벌 수위를 결정한다. 이 중 검사는 1) 수사와 2) 기소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었다. 이가 낳을 극단적인 부작용의 예를 들어보자. 1) 아무 죄도 없어도 뒤질 수 있으며, 2) 명확한 죄가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재판정에 넘길 수 있다.

2. 이미 프랑스는 200년도 더 전에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됐다

프랑스혁명 후, 나폴레옹은 검사에게 직접수사권을 부여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프랑스 법률가들은 ‘검사는 기소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짱센데, 수사까지 직접 하면 짱짱권력됨’이라는 이유로 거부한다. 200년 전 일이다. 현재 검찰 개혁은 프랑스가 200년도 전에 당연시한 권력 분립이 핵심이다. 즉 검찰이 독점한 ‘기소’와 ‘수사’의 권리 중, ‘수사권’을 경찰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3. 일제 강점기 때는 검찰과 경찰, 양쪽 다 무한권력이었고, 경찰이 더 개새끼로 여겨졌다

한국에 근대적 사법체계는 일제강점기부터 정립됐다. 일제는 검찰과 경찰 양쪽에 ‘무제한 강제수사할 자유’를 부여한다. 법이건 뭐건 조선인들 빠르게 때려잡으라는 편의주의였다. 검찰과 경찰 둘 다 무한권력이었지만, 검찰 쪽수가 워낙 적어 힘은 경찰에게 실린다.

4. 이승만 정권은 경찰 권력을 막 쓰다가, 4.19 때 경찰이 시민에게 총을 쏘며 몰락한다

해방 후 미 군정은 경찰의 수사권을 앗아간다. 이제 경찰은, 검찰의 명령이 있어야만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일제강점기의 기존 행정력을 이용하려 했고, 경찰의 권력은 여전히 남용됐다. 막강한 권력에 취한 경찰은 4.19 혁명 때 시민에게 총을 겨누었고, 이로 인해 이승만 정권은 무너진다.

5. 검찰은 박정희, 전두환 시절, 공안의 뒤를 받쳐주며 힘을 키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얻은 군인이다. 그는 군 기무조직을 기반으로 한 중앙정보부(중정)에 초법적 권한을 부여한다. 검찰은 그 아래에 두다시피 했는데, 중앙정보부 차장 신직수가, 이후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맡은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래도 1962년,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헌법으로 격상되며 법적 권리는 더욱 강화됐다. 법적으로는 수사와 기소에 이어, 그 중간에 자유를 구속할 권리까지 검찰의 독점이 된 것이다.

6. 검찰이 실제로 힘을 얻은 건 노태우 시기이다

전두환 역시 쿠데타로 권력을 얻었기에, 자신에게 절대충성하는 조직이 필요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그 역할을 수행했는데, 역할은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와 비슷했다. 하지만 노태우는 87년 혁명 이후 직접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다. 이전 군사독재정권의 중정과 안기부 =처럼 대공사건 조작으로 정국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노태우는 이를 ‘범죄와의 전쟁’ 등으로 풀어나갔는데, 이때 각 지방검찰의 검사장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검찰총장이 신직수의 장학생으로 불리던 김기춘이었다.

7. YS와 DJ, 민주정부도 검찰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은 하나회 등의 거대 적폐와 맞서야 했고, 이 칼부림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은 검찰 뿐이었다. 검찰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지겠지만, 여러 사회의 비리, 부정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검찰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김종필(JP)의 자민련과 함께 한 DJP 연합은 불안했고, 국회는 늘 여소야대였다. 그래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검찰을 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YS-DJ 말기,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어느 정도로 정치권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B. 검찰 견제와 실패의 역사: 노무현의 당선에서 죽음까지

8. 노무현은 본격적인 검찰 개혁에 나선다

김대중(국민의정부) 시기와 노무현(참여정부) 시기를 완전히 가를 수는 없다. 민주정부의 방향성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고, 정치인과 학자도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의 성향은 좀 달랐는데, 김대중은 신중한 쪽이었고, 노무현은 칼을 뽑으면 뭐라도 하는 쪽이었다. 노무현은 시작부터 파격 인사를 뒀는데,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으로 문재인, 법무부장관으로 강금실을 임명한 것이었다.

9. 법무부장관-민정수석 콤비가 비 검사 출신인 것은, 검찰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이전까지 이들 셋은 대개 검사 출신이었다. 이들 간 서열도, 검찰 기수에 따라 결정됐다. 노무현 이전 정부들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검찰 출신으로 앉히며, 검찰을 직접 움직이고는 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변호사 출신 문재인과 판사 출신 강금실을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으로 앉혔다. 그리고 “권력을 위해 검찰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검찰 입장에서 이 메시지는, 검찰의 권력이 줄어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10. 노무현 초기부터 검찰의 인사권을 두고, 정부와 검찰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원칙적으로 검찰의 인사권은 법무부장관에게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 실질적인 검찰 인사권은 검찰총장에게 있었다. 검찰총장이 인사를 구성하고, 법무부장관은 형식적으로 인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법무부장관 강금실은 직접 작성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안을 검찰에 통보한다. 이에 검찰은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김각영 검찰총장은 항명성 사퇴한다.

11. 노무현의 ‘불간섭’ 원칙은 오히려 검찰에게 힘을 실어줬다

노무현은 지속적으로 강금실에 힘을 실어줬으나, 검찰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참여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검찰을 컨트롤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검찰은 오히려 노무현 정부에게 칼을 겨눈다. 대선 참모였던 안희정,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한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이 삼성에서 100억, LG에서 150억을 받은 차떼기 사건도 밝혀내며, 검찰의 인기가 치솟아오른다. 개혁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12. 이명박 정부, 검사는 다시 정권의 개가 되고 노무현의 목숨마저 앗아간다

검사와 판사는 기존 체제를 지키는 사람들이기에, 애초에 진보와 맞기 힘들다. 또 보수 정치세력이 검찰 활용법을 잘 알기도 한다. 김기춘만 해도 정보기관(중정), 검찰(총장), 정치(비서실장)를 모두 다 해본 사람이다. 이명박 정부는 시작부터 검찰을 내세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다. 그 결과는 노무현의 자살이었다.

13. 노무현의 죽음은 다시 검찰에 대한 반발을 낳는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에 역풍으로 다가왔다. MB정부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중수부는 검찰권력의 핵심이다. 대검은 원래 각급 검사를 지휘 감독하는 기관인데, 이 중 중수부는 유일하게 직접 수사 기능을 가지고 있다. 고도의 정치적 사건을 다루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을 잃기 쉬웠다. MB정부의 김준규 검찰총장이 검사장급 이상 간부에게 200~300만원 돈봉투를 돌린 사실이 드러나며, 중수부 폐지 논란은 더욱 가속화됐다. 

했다. 하지만 윤석열 임명에는 시작부터 의문이 뒤따랐다. 그는 어디까지나 검찰주의자일 뿐, 검찰의 권력 약화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인물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조국 인선 이후, 이는 사실로 드러난다.

21. 문재인 정부는 민정수석-법무부장관, 모두 비검사 출신으로 시작한다

조국 민정수석,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모두 학자 출신으로 검사 경력이 없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잘 보여준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 역시 ‘검찰 수사를 지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때는 적폐청산이 우선이라 검찰개혁은 뒤의 일이었고, 윤석열과의 충돌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또한 당시 민주당은 120여석밖에 없는 정당이라, 뭘 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D. 조국 사태: 검찰과 언론, 본질을 흐리고 망신과 복붙의 잔치를 벌이다

22. 조국 관련 의혹 중 조국이 직접 형법의 저촉을 받을 사안이나 공적 비리는 없었다

조국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자마자 야당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여러 의혹 중, 가장 시끄러웠던 의혹은 표창장 위조, 의학논문 1저자, 인턴신 특혜, 경력 허위기재 등등등등등의(…) 입시비리였다. 하지만 입시비리 뿐 아니라, 그 어떤 혐의에서도 조국이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은 없었고, 공권력을 남용하지도 않았다. 검찰이 짜내어 수사를 벌였지만, 구속대상조차 조국이 아닌 정경심이었다. 70여곳을 압수수색했음에도 조국 수사는 불기소로 끝나버렸다.

23. 그럼에도 조국은 문재인 정부의 공정사회론과 적폐청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는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모여 집회를 했다. 양쪽 대립이 점점 커지며, 당시 문재인 대통령 긍정평가는 역대 최저인 39%(한국갤럽)까지 내려갔다. 공정을 외친 조국이, 기실 그의 자녀들에게 온갖 특혜를 누리게 한 사실에 실망한 것. 그게 아니라도, 시끄러운 난리통은 지지율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020년 180석을 확보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적극적으로 검찰개혁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왔다.

32. 윤석열의 오른팔 한동훈 검사장의 검언유착 논란과 함께, 측근 비호 논란이 일어났다

채널A의 이동재 기자가 취재 윤리를 위반한 게 밝혀지는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이 피의사실 공표 등, 내밀한 정보를 이동재 기자에게 전달한 ‘검언유착’ 논란이 일어난다. 윤석열은 측근 한동훈을 감싸기 위해, 검언유착 수사 검찰을 견제할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한다. 이는 측근 비호 논란을 낳았고, 추미애는 윤석열 측을 수사하라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

33. 검언유착 – 권언유착, 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난다

하지만 채널A 이동재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간, 명확한 검언유착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MBC는 마치 검찰이 작업 친 것처럼 기사를 내보낸다. MBC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 정권나팔수로 변한 방송에 파업으로 맞서싸웠으나, 정작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자발적인 나팔수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 이런 MBC를 ‘권언유착’이라 비판한 SBS 역시 ‘검언유착’과 유사하게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논란이 논란만 낳다가, 자연히 뒤의 이슈에 묻히게 됐다.

34. 윤석열은 자신이 부하가 아니라 뻗대고, 추미애는 부하 맞으니 말 들으라 충돌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 아냐”라고 추미애에 맞선다. 이에 추미애는 “부하 맞거든”이라 대응(…) 참고로 법률상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가 맞다. 또한 윤석열은 검찰총장 관련 수사에 법무부장관이 개입함을 부당하다 했으나, 반대로 전년도 윤석열은 조국 전 장관을 조졌다. 이렇게 서로 간 견제가 필요한데, 윤석열은 일방적으로 내로남불을 시전한 것. 결국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은 철회됐지만,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35. 추미애는 2차 인사 단행으로 윤석열 주변인을 모조리 몰아낸다

8월 추미애는 또 다시 검사장급 26명 인사를 단행한다. 이미 1월에 윤석열 주변 수족을 많이 자른데 이어, 검찰 지휘부를 완전 장악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인사를 통과시키지 못했던 강금실 전 장관과 달리, 제도와 인사 개혁을 동시에 단행하여, 검찰개혁을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나중에 윤석열은 스스로를 “식물 총장”이라고 할 정도로, 검찰에서 그의 수족은 모조리 제거됐다. 이쯤되면 메시지는 명확하다. “너 나가”

F. 추윤 대전 Part 2: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어’, 추미애의 동귀어진

36. 라임 사태를 두고서 검찰은 또 언론을 활용한다

라임은 한국 사모펀드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낸 사기로, 주범 중 하나인 김봉현은 4월 구속되었다. 그런데 이후 김봉현 수사는 계속해서 청와대 행정관, 강기정 등의 키워드가 나오며, 마치 여당이 개입된 게이트인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이후 김봉현은 검찰 진술을 뒤엎고, “야당 유력 정치인에 로비를 했으나, 오직 여당 유력 정치인들만 수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의 권력형 수사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오른다. 

세상 눈치를 훨씬 보게 됐다. 좋든 싫든 늦든 빠르든, 검찰 스스로도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H.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

50. 국민의힘: 애초에 망했기에 검찰이 야당처럼 되어버림

조국 사태 초기까지만 해도, 야당이 조국을 털며 싸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청와대와 여당이 맞서 싸우는 상대는, 야당이 아닌 검찰이 되어버렸다. 검찰이 여야 뒤에서 정보를 주고 싸움을 기획할 때도 있고, 누군가를 신나게 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예 야당이 보이지 않고 검찰이 정부여당과 싸우는 모양새는 드물다. 이는 야당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기에, 비여권 지지자들이 검찰에 희망을 거는 형국. 그리고 여전히 이 당의 지도자이자 지배자는 할아버지다.

51. 더불어민주당: 아씨, 내 지지율… 전전긍긍하며 발만 동동

대통령 지지율은 조국 사태로 역대 최저로 내려갔다. 좀 회복하더니, 윤석열과 추미애 갈등을 통해 또 최저로 내려갔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기에, 선거 때 좀 묻어가려는 면이 있다. 당장이야 지지율이 최저 찍고 버티는 것 같지만, 사실 세월호 때 박근혜 지지율도 그리 낮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잡음 속 피로감은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내후년 재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짜증나는데, 뭘 할 수도 없는 입장.

52. 검찰: 문재앙…

추미애가 저렇게 막 나가는 사람인진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추미애와의 싸움에서 검찰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대통령과 장관 맘대로 인사가 결정됐고, 개혁이란 이름 하에 기존 권력도 줄어들었다. 물론 정부 지지율도 깎았고 추미애 이미지도 깎아먹었다. 그런데 추미애는 쿨하게 떠나버렸고, 이 싸움 와중에 검찰 이미지도 충분히 깎여버렸다. 윤석열은 남았는데, 이긴 게 이긴 게 아니다. 제대로 붙어서 깨진 것보다 더 엄하게 돼버렸다. 눈치 챙겨야?

53. 윤석열: 이러지도 못하는데 저러지도 못하네, 그저 바라보며 ba-ba-ba- baby…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관둔다면, 정치적 행보로 비춰질 것이다. 그는 이미 대선후보급으로 거론되고 있다. 야당 그 누구보다 기대감이 높다. 그런데 그는 검찰주의자다. 대선주자로 나서는 게 검찰에 도움이 될까? 이기기도 힘들 뿐더러, 지는 순간 검찰에는 파국이 올 수 있다. 그렇다고 추미애가 떠난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본인이 실컷 얻어맞았는데, 추미애가 떠나며 자기가 내쫓은 것처럼 보인다. 수사실력이 뛰어난 전설의 특수통이지만, 정무적 감각은 별로지 않았나 싶다.

54. 추미애 라이즈: 법무부장관으로 대선 주자급이 됐다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추미애는, 탄핵 찬성 꼬리표를 때고자 노력했다. 2012년 대선 때 대구경북 중심으로 지원유세를 다녔고, 이후 당대표 시절 문재인에게도 힘을 실어주며 신의를 얻었다. 여기에 모두가 꺼리던 법무부장관 칼질은, 탄핵 꼬리표를 떼어내는 건 물론, 친문의 대선주자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현재 친문 진영은 안희정이 깜빵 가고, 김경수도 선거법으로 위태로운 상태다. 이재명이 당선되면 친문들의 자리 보전은 힘들기에, 추미애에게 힘이 실릴 수 있는 상황이다. 당장에야 이미지 더러워졌지만, 정치인으로의 배짱과 포부는 보여준 것만으로 승리자인 셈.

55. 문재인: 검찰개혁 좋은데요… 대통령인가요? 정치인인가요?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 당시, 검찰의 무례함과 힘을 눈앞에서 보았다. 이명박 정부 때는 검찰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을 지켜봤다. 검찰개혁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 또, 주택문제에는 김현미 만큼 무식하지만,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을 쓸 정도로 검찰 지식도 풍부하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렇게 욕 먹으며 검찰개혁을 밀어붙였을 터. 허나, 그 과정에서 정치력의 한계는 끔찍했다. 그는 끝까지 윤석열과 추미애 갈등 해결에 나서지 않았고, 심지어 칼질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인사권 행사를 위임받는 자리다. 원칙주의라는 이름 하에 책임을 미룬 셈.

56. 조국: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모자라니 인스타도 하셔야…

그냥 정치인으로서 한참 부족함을 보여주고 끝났다. 검찰이 심하게 턴 건 사실이지만, 추미애처럼 깡다구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국이 블라블라 해명하다 입 꼬일 때, 추미애는 ‘뭐 이 씨발놈들아’라며, 그냥 인사 모가지로 대응했다. 가뜩이나 미남 금수저라 질시 받기 좋은데, 그와중에 조스트라다무스 어록으로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인물도 좋은데 트위터, 페북 말고 인스타도 좀 하시라. 너무 고생해서 얼굴도 좀 망가지긴 했지만, 인스타에는 필터 기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