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3
[준비 안 된 ‘노인공화국’] 노인 빈곤·자살률 OECD 1위,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농담이 현실이 된 사회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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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노인무료급식소에서 무료 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르신들이 줄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살 만큼 살았지, 늙으면 죽어야지.”
79세 이덕영씨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렵게 사는 자식들에게 행여 짐이 될까 미안해서, 패기 있고 열정적이던 자신의 젊은 시절이 그리워서 입에 달고 사는 말이란다. 노년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면 일이 없다. 아파도 더 아프다. 먼저 떠나지 않으면 홀로 남겨진다. 외롭다. 이씨처럼 ‘죽어야지’라는 자포자기에 빠진다. 815만명.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5184만명)의 15.7%다. 2049년에는 1901만명(40%)까지 늘어날 전망(통계청)이다. 늙음을 피할 수 없듯, 노인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국가 과제다. 발등의 불이 되고만 노인 복지 문제를 중앙SUNDAY가 되짚는다. 일자리 상실→빈곤→고립이란 사슬을 끊고 극단 선택, 세대 갈등이란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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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대통령실 앞에서 노년알바노조가 ‘노인수당법’을 신설하고 감액기준을 없앨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는 그나마 일이라도 있다. 마포구에서 조그마한 포장마차를 운영 중이다. 이씨는 “자식들에게 손 벌릴 사정도 안 되고 노후 준비도 해 놓은 것이 없어서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며 “건강이 계속 나빠지니,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처럼 은퇴 이후에도 경제적 빈곤 때문에 계속해서 일해야 하는 노인들이 많다. 오피스텔 청소일을 하다 다리가 불편해 그만뒀다는 정옥연(82)씨는 “거동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경제적 지원은 마른하늘의 단비”라면서도 “하지만 노인 기초연금 월 30만원 정도로는….”라며 말끝을 흐렸다. 실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20’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소득이 중위소득의 50%(상대빈곤선) 이하인 비율은 43.2%다. 이 수치는 2016년(45.0%) 이후 2년 연속 개선됐지만, 15~64세의 상대적 빈곤율(11.8%)보다 여전히 4배 가까이 높다. OECD 평균인 13.1%보다는 3배 이상 높았다. 한국 뒤로는 라트비아(39.0%), 에스토니아(37.6%) 등의 국가들이 자리했고 미국과 일본은 각각 23.1%, 20.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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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노인 빈곤율은 노인들의 우울증, 더 나아가서는 높은 자살률로도 이어진다. 한국의 노인자살률(인구 10만명당 46.6명)은 OECD 국가(평균 17.2명) 중에서도 압도적인 1위이다. 이는 고령에 활동이 적은 70·80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팔팔한 60대 노인”들의 상실감과 무기력함은 더 크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68세 정일형씨는 4년여 전 퇴직한 후부터 급격하게 무너졌다. 정씨는 “온종일 하는 일이 없다 보니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덮쳤다”라며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 경비원 일이라도 찾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물질적 빈곤에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이닥치는 정신적 빈곤은 노인들에게는 재앙 수준이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과 건강 상태가 자살의 배경이라면 구체적으로 자살을 부추기는 것은 심적 외로움일 수 있다”라며 “‘내가 이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인가?’라는 의문과 좌절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의 65세 이상과 현재 65세 이상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전혀 다르다”며 “아직 정정한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적절한 재취업의 기회를 만들어 인생 이모작을 꾸릴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퇴사 후 1년 내 임금근로자로 재취업하는 비율은 25~54세의 경우 53.4%였으나 65~74세의 재취업률은 24.1%로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중·고령층에서 양질의 일자리 감소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65~74세의 1년 내 재취업자의 경우 정규직으로의 재취업률은 4.3%에 불과해 노인 일자리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끼니도 힘든 데 병원 가는 건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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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혼자 계시는 어르신들 보면 계속 괜찮다, 괜찮다고만 하시는데, 병원에 갈 돈도 없고, 가기도 힘든 거죠.”
빈곤은 고립을 부른다. 3년째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생 이정훈(26)씨는 “어르신들은 몸이 안 좋아지셔도 그냥 나이 들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시는 경우가 많아서 병을 키울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요청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의 수는 2012년 1025명에서 2021년 3159명으로 증가했으며, 이 중 65세 노인의 비율이 45%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희 노인생활과학연구소 소장은 “나이가 들수록 친구나 가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며 “과거에는 자식들이 부양 의무를 졌지만, 이제는 그 책임이 사회로 옮겨졌다. 그런데 현재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독거노인에 대한 관리나 보호는 개인 봉사자들이나 복지 요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독거노인들은 질병, 낙상, 화재, 가스 누출, 치매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현재 지자체의 인력으로는 이들을 모두 돌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미숙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연구위원은 “돌봄 인력이 부족하면, 주변 노인이 노인을 챙기는 ‘노노(老老)케어’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라도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생활 침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선에서 독거노인들의 생활을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모니터링하는 방식도 생각해 봐야 한다”며 복지 사각지대를 좁혀 나갈 것을 제언했다.
“끼니 해결도 고민인데, 병원에 가는 건 사치라고 생각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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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커에 폐품을 가득 싣고 걸어가는 노인. 김성태 객원기자
김모(69)씨는 되레 기자에게 질문했다. 독거노인 봉사자 이정훈씨의 발언에 대한 답 같기도 했다. 그는 “산불감시 요원이라도 하려고 했더니 경쟁이 너무 세고 허리 아픈 내가 감당할 체력 검사가 아니더라”며 “일을 못 한 지 벌써 3년째”라고 밝혔다. 81세 이창진씨는 “받는 돈은 30만원이 채 안 되는데 이번 한 달 병원비로만 50만원 돈을 지출했다”며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도 당뇨 약값, 물리치료비 등 고정적으로만 매달 몇십만원이 나간다”고 토로했다.
의료비 부담도 노인들의 삶을 한층 궁핍하게 한다. 2015년 85만 9000원이던 고령자 1인당 의료비 본인 부담금은 2020년 110만 6000원으로 5년 사이 30%가량 증가했다. 의료비 부담이 늘고 있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본인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거나 준비가 된 고령자 비중은 48.6%로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고령화 사회로 노인빈곤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10년간(2011∼2020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연평균 4.4%(29만명) 증가했는데, 이는 OECD 평균(2.6%)의 1.7배로 가장 빠른 추세다.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진입했다. 초고령사회(20% 이상)로 진입하기까지는 앞으로 7년. OECD 주요국 중 가장 촉박하다. 한동희 소장은 “저출산이 심해지고,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노인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라며 “연금제도, 돌봄 서비스 등에 대한 선행적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자녀들은 부모 부양을 꺼리고 있다. 부모 부양을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은 2010년 37.8%에서 2020년에는 27%로 10%포인트가량 하락했다. 반면 가족과 정부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시민들의 의식과 가족 구조는 달라지는데 노인 복지와 관련된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연금 개혁 청년 세대와 갈등 소지
“열쇠는 연금제도가 쥐고 있지만, 현실이라는 자물쇠와 맞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엔 일자리입니다.”
정순둘 교수는 노인 빈곤 해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금제도를 탄탄히 하는 것이라고 제언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금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근로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노인들은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증가하는 사회적 부의 분배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이는 노인 빈곤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현재 공적연금은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국민연금 제도는 40년을 가입하면 평균소득의 40%(소득대체율 40%)를 주도록 설계돼 있는데 올해 4월 기준 20년 이상 가입한 비율은 15.4%에 불과하다. 이는 취업난으로 노동시장에 나오는 시기가 느려지고, 50대 중후반이 되면 조기퇴직 하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정년 60세가 지켜지더라도 노인 기준인 65세까지 5년의 소득 공백도 발생한다. 이에 청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 못지않게 노인 적합 일자리를 늘려 노인 빈곤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 교수는 “나이 때문에 사회 참여가 제한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기업은 나이 든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을 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노년층 재취업은 세대 갈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대학생 정기현(28)씨는 “어느 정도 지원은 필요하겠지만, 연금을 확대하면 노후 준비를 제대로 안 한 사람들만 이익을 보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취준생 김모(25)씨는 “노인 재취업이나 정년 연장 이야기를 들으면 안 그래도 어려운 취업이 더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래 세대인 청년들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나 주는 것도 건강한 세대교체의 일환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런 청년층의 반감에 대해 이민아 교수는 “노인들이 가지려고 하는 직업이 청년들과 크게 겹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젊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텐데, 생각을 전환해 세대 간 연대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인 문제는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한동희 소장은 “65세부터 100세까지 너무 다양한 노인 문제가 있는데 우리는 계속 노인 문제를 하나의 덩어리로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돌봄이 필요한 노인, 재취업이 필요한 노인 등 미시적인 제도를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혜지 교수는 “정년 전까지 모든 관계가 직장 중심이었다가, 60세에 은퇴해 동네에서 새로운 활동을 찾고, 친구도 찾으라는 건 사회구조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라며 “국가는 이런 노동 중심적인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하고, 개인은 크고 작은 커뮤니티에서 오랜 기간 함께 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살펴봐야 할 노인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된 이유는 우리가 그 가속도를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덕을 넘으면, 속도는 빨라진다(조지 번스).”라는 말도 있건만.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당정 공청회에서 "여자·청년들은 실업급여로 해외여행, 샤넬 선글라스 사"
'하한액 폐지' 논의…최저생계비 124만 원 아래 되나
정부·여당이 '노동개혁' 일환으로 이번에는 실업급여 제도를 겨냥하고 나섰다. 당정은 12일 국회에서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서 "실업급여가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다", "장기간 근무한 남자분들은 어두운 얼굴로 오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오고, 실업급여 받는 도중 해외여행 가고 샤넬 선글라스 사고 옷 사고 즐기고 있다"고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일부 부정수급 사례를 겨냥한 것이라고는 해도, 집권세력이 실업급여 등 복지제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냈다는 맥락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여성·청년 노동자에 대한 혐오발언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2일 당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를 받는 게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긴다"며 "공정한 노동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장은 "실업급여 제도의 궁극적 목적은 수급자의 근로의욕"이라며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가 (근로의욕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가세했다. 임 의원은 "과도한 급여 수준은 구직 의욕을 낮춘다"며 "오랜기간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가 실직한 사람에게 불공정하게 쓰인다면 누가 성실히 납부하고 싶겠나"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노동비서관 출신인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최근 실업급여가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손쉬운 (실업급여) 수급 여건으로 인해서 근로의욕 저하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가세했다. 정부 측 참석자인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 조현주 씨는 심지어 이날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퇴직하면 퇴사처리가 되기 전에 실업급여 신청하러 센터를 방문합니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방문을 하세요.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은 드무세요. 그런 분들은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 같은 경우, 정말 장기적으로 갑자기. 그런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그리고 실업급여 받는 도중 해외여행 가요. 그리고 자기 돈으로 내가 일했을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생각했을 때 '이거는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일자리 소개하려고 연락하면 이 분들 하시는 말씀이, 처음 와서 신청할 때부터 그런 분도 계세요. '나 취업 안 할 테니까 일자리 소개하지 마', '취업하라고 하지 마' 이런 사람도 있고, 좋은 자리가 나와서 연락을 하면 '죄송하지만 (수급기간) 끝날 때까지 연락 안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들을 하세요. 그리고 본인들끼리 대기하는 동안에도 얘기를 하세요. '이번에 내가 급여가 얼마 나오는데 언제까지, 몇 개월까지는 (수급을) 하니까 끝날 때쯤 해서 취업하자' 이렇게 본인들도 얘기를 하고 계시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제대로 굴러가는 게 맞는지 저희들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으로 취업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본인들 스스로가 거부를 하시니까 많이 속상한 경우도 많습니다. "
위험수위를 넘나든 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모두발언은 '실업은 노는 것'이라는 보수적 시각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정은 이날 공청회에서 실업급여 하한 폐지·축소에 의견을 모았다고 박 의장이 설명했다. 박 의장은 공청회 후 기자들과 만나 "2019년 실업급여 보장성을 확대하면서 실업급여가 일하고 받는 세후 월급보다 더 많은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2022년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 179만 9800원은 최저 월 실업급여 184만 7040원보다 적다"고 지적했다.
박 의장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역기능을 줄이고 순기능을 늘릴 수 있도록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더라도 상한액을 늘리거나 기간을 늘리는 문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한액을 낮추는 것과 폐지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있나'라는 질문에 그는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이해해달라"고 답했다. 그는 "구직자가 더 활발히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구직 활동을 촉진하며 부정수급을 예방하기 위해 관련 행정 조치 강화를 강화하는 데도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폐지되면, 2023년 기준 주 40시간 근무 최저임금 노동자의 실업급여가 정부가 발표한 1인 가구 최저생계비 124만 원 아래로 떨어진다.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 극복, 생활 안정 지원 등 정부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실업급여 제도의 취지 자체를 흔든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현재 실업급여는 퇴직 전 3개월 간 평균임금의 60%로 결정된다. 다만 30일 기준 하한액은 184만7040원, 상한액은 198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폐지되면, 2023년 기준 주 40시간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실업급여는 120만6348원(201만 580원의 60%)이 된다. 양대노총이 지난해 발표한 1~4인 가구 적정생계비 247만9000원은 물론 정부가 스스로 결정한 올해 1인 가구 최저생계비 124만6735원에도 미달하는 금액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홈페이지에서 실업급여의 취지를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가 실직하여 재취업 활동을 하는 기간에 소정의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실업으로 인한 생계불안을 극복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와주며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생계불안 극복, 생활 안정 등 정부가 스스로 밝히고 있는 제도 취지를 부정하는 안을 당정이 논의 테이블에 올린 것이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보다 높다는 주장에도 왜곡이 포함돼 있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국민연금 본인부담금의 25%,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의 50%를 내야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올해 실업급여 하한액 수급자의 실수령액은 173만 가량으로 주 40시간 근무 노동자의 최저임금 실수령액보다 낮아진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 논의에 대해 "코로나가 왔을 때 세계적으로 실업급여가 마지막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해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됐다"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재난이나 삶의 위기를 함께 넘어갈 생각은 없고, 국가 재정을 염려하고 이 사람(실업자)들 놀지 말고 일하라고 할 생각만 보인다"고 비판했다.
오 실장은 "세계적으로 한국만 (실업에 대비하는 사회안전망 제도가) '고용보험'이고 다른 나라는 보통 '실업보험(unemployed insurance)'"라며 "실업에 대한 철학 자체가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져 있다. 실업이면 다 논다고 생각하는데 실직 당해 본 사람은 안다. 누가 놀고 싶어서 실업을 당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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