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78의 나라]
애 없는 月천만원 부부, 애 낳은 月550만원 부부…이게 달랐다 [출산율 0.78의 나라]
결혼 2년 차인 서울의 대기업 사원 나모(33)씨 부부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 나씨 부부의 월 소득은 1028만원이다. 주거비(70만원)와 식비·생필품비(100만원), 용돈·여가비(130만원), 보험료(70만원) 등 지출을 제해도 매달 448만원 가량이 남는다. 지난해 2인 가구 중위소득(326만원) 보다 월 저축가능액이 100만원 이상 많다. 이른바 ‘워라밸’도 괜찮은 편이다. 나씨의 아내는 매일 퇴근 후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즐긴다. 나씨 역시 취미 생활로 어항을 가꾼다. 나씨 스스로도 “삶에 특별히 부족한 점은 없다”고 한다.
나씨는 그러나 “결혼 이후 출산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맞벌이와 공동거주란 이점을 누릴 수 있는 결혼과 달리, 출산은 경제적으로 확실히 계층 상승 방해요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나씨는 영등포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에 자가로 거주중이다. “계층 상승의 척도는 주거”라고 생각하는 나씨는 향후 용산구나 여의도의 84㎡ 아파트 구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필요한 자금이 적어도 15억원 정도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미래소득을 늘리기 위해 나씨는 매일 퇴근 후 4시간씩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너무 심하다. 내가 아이를 낳아도 건강한 정신상태를 갖고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인구 쇼크' 수준인 0.59명(전국은 0.78명)까지 떨어진 서울 2030 세대의 자화상이라 여기는 나씨는 “1000만원 정도 일시금을 주는 미봉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출산율 감소세는 되돌릴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라고 되뇌었다.
반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명을 넘긴 세종시(1.12명)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세종시에 사는 공무원 이모(34·여)씨 부부는 월 소득(550만원)은 나씨 부부의 절반 수준이지만, 지난해 아들을 낳았다. 세 식구가 식비·생필품비(80만원), 육아용품비(60만원) 등을 쓰고 나면 저축 가능한 돈은 130만원 정도다. 1억8000만원에 30평대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이씨 부부 역시 ‘내집 마련’은 고민거리다. 이씨는 “요즘 집값이 다시 조금 오르는 추세라 세종 외곽에는 30평대 4억원대 주택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며 “외곽에 집을 살지, 중심지에서 전세를 연장할지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 중인 이씨는 '임시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경쟁에서 도태될 거란 스트레스는 덜한 편이다. “공무원이라 복귀 후에도 내 자리가 있다는 확신이 있고, 주변에서도 육아휴직 후 복귀하는 사람이 적잖아 걱정이 없었다. 또 이미 승진을 하고 업무를 어느 정도 익힌 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오전 6시에 아들과 함께 잠에서 깨 남편의 출근(오전 8시~오후 4시 근무)을 돕고, 이후에도 아이를 돌본다는 이씨는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는 느낀다”면서도 미래에 자신은 물론, 자녀의 삶도 행복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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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2030세대 84.2%가 “출산율 감소세 심각”
대한민국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했다. 2017년 1.05명이었던 출산율이 2018년 0.98명으로 처음 1명 아래로 떨어진 뒤, 0.84명(2020년), 0.81명(2021년), 0.78명(2022년) 등 하염없이 추락 중이다. 통계청은 국내 인구가 2070년 2377만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 업체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전국 20~39살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28일 실시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5% 포인트)에서도 응답자의 84.2%가 “출산율 감소세가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자녀를 가질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50.0%에 그쳤다. 38.1%는 자녀를 가질 의향이 없다고 답했고, 11.9%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단순히 출산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도전하는 기회를 잃는 비용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가격 효과’(price effect)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도의 경쟁사회에서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지는데, 안정적 사회·경제적 지위를 마련하기는 어려워 지고 있다. 일자리·주거 등은 복합적인 미래 예측 수단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출산 욕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저출생 현상은 주거·일자리 등 현재의 경제적 부담, 미래에 대한 전망과 상관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에스티아이 조사에서 ‘출산율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7.4%는 양육비용 부담을 꼽았다. 일자리 불안정(20.7%), 주거 불안정(19.9%)이라고 답한 이도 많았다. 혼인율 감소 원인을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30.3%는 주거 불안정을 꼽았다. 이후 일자리 불안정(24.9%), 출산·양육 부담(21.9%) 등 경제적 요인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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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소득, 미래 전망 따라 극과극 갈린 출산 의지
출산 의지는 소득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출산 의지가 있나’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월 소득 600만원 이상에선 70.1%를 차지했지만 400~600만원에선 60.2%로 줄었고 200~400만원 구간에선 52.7%, 200만원 미만에선 48.0%로 감소했다. 본인이 정의하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서도 상(70.1%)·중(51.3%)·하(42.2%) 등 출산 의지 차이가 컸다. ‘상대적 박탈감’의 체감 정도 역시 출산 의지에 영향을 미쳤다.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61.4%)는 이들과 ‘매우 느낀다’는 응답층(37.0%) 사이의 출산 의지 격차는 24.4%포인트에 달했다.
현재의 처지보다 출산의지와 상관관계가 더 큰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었다. 자녀의 삶에 대해 ‘매우 행복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의 출산 의향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89.6%)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 중엔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26.0%에 불과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 나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들 역시 출산 의지가 77.5%로 높았다. 반면에 ‘매우 낮다’는 응답층에서는 출산 의향이 거의 반토막(34.9%)났다. 자신의 삶이 ‘매우 행복할 것’이라고 전망한 이들은 출산의향(65.0%)이 뚜렷했고,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들 중엔 출산 의사가 있다는 답변이 23.3%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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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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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경쟁감이 높은 우리나라의 저출산은 생존 본능이 극대화된 결과“라며 “교육과 일자리가 서울에만 편중되니 성공에 대한 기준이 획일적이고 경쟁도 치열하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스웨덴이나 프랑스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경쟁감이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낮다”고 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을 생애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거쳐가는 것으로 생각했고,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 작동했다”며 “지금은 경제적 여건이 사회의 규범까지 바꾼 단계여서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사회적 동기나 압력도 약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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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에 대한 2030 세대 인식 조사
김수민·하준호·신혜연·김정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애 안 낳는 게 부성애" 요즘은 남편들이 '딩크족' 외친다 [출산율 0.78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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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출산을 먼저 제안하는 2030세대 남편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 베이비페어 행사에서 2030세대 부부가 젖병소독기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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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출산율 0.78의 나라 ②]
직장인 서모(39)씨는 최근 아내에게 먼저 ‘딩크(DINK·무자녀 맞벌이)족’이 되길 제안했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부부에게 집중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아내의 동의를 받은 서씨는 부모에게도 ‘딩크’ 선언을 하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아내 말고 나에게만 말씀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간 ‘비(非)출산주의’는 남성보다 여성 사이에서 뚜렷한 현상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혹여 부모가 아내의 뜻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해서였다.
비출산에 동참하는 20·30대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윤모(31)씨는 “낮은 확률로 결혼해도 비출산을 선택할 것”이라며 “현재 월급 수준으로 부모와 비슷한 수준의 환경을 자녀에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전동주(25)씨도 “서울 토박이인 데다 직장도 서울이라 서울 밖에 집을 구할 생각은 없는데. 서울 안에선 전세집을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돈을 쓰기보다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부부를 위해서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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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男 출산 의향, 女보다 높지만…절반 겨우 넘어
중앙일보가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지난달 27~28일 전국 만 20~39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과 출산에 대한 2030 세대 인식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 결과, 20·30대에서 출산 의향이 있는 남성은 10명 중 6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중 ‘자녀를 가질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57.2%, ‘자녀를 가질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33.5%였다.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응답은 50.0%, ‘자녀를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은 44.8%였다. ‘내 삶을 위해 자녀를 갖는 게 낫다’는 응답은 52.3%, ‘내 삶을 위해 자녀를 갖지 않는 게 낫다’는 응답은 29.1%였다. 모두 긍정적인 응답이 부정적인 응답보다 높았지만, 절반을 겨우 넘긴 수준이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은 “전통적 성 역할이 세대가 거듭될 수록 희미해지면서, 출산에 대한 ‘비용’이 남성에게도 와 닿기 시작한 것”이라며 “‘아이는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인식을 남성들도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점점 개인을 중요시하는 문화로 변화하다 보니 내가 누려야 할 시간과 경제적 자산을 자녀 등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것”이라며 “이는 남·녀 모두에 해당하는 이슈”라고 분석했다.
비출산 동참 의사는 20대 남성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30대 남성은 ‘자녀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응답이 54.1%로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42.6%)보다 많았지만, 20대 남성의 경우 ‘자녀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응답이 45.8%로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응답(47.1%)보다 낮았다. ‘내 삶을 위해 자녀를 갖는 게 낫다’는 응답도 20대 남성(49.2%)에서 30대 남성(55.4%)보다 낮게 나타났다. 다만, ‘자녀를 가질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30대 남성(56.2%)과 20대 남성(58.0%)에서 각각 비슷하게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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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대男 “아이 낳지 않는 게 곧 부성애”
20대 남성 사이에서 출산에 부정적인 인식이 더 높게 나타나는 건 취업과 주거 마련에 대한 불안감이 30대 남성보다는 더 큰 탓이다. 대학생 김모(23)씨는 “전교 1등을 하는 친구가 받는 사교육 수준을 보고 대학 진학은 역시 돈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대학생이 된 뒤에는 그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걸 보고 일찌감치 2세 생각은 접었다”며 “굳이 아이를 낳아서 내 삶까지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회초년생인 손모(26)씨는 “수도권에 전세를 구하더라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할 텐데 계속 전학을 다녀야 하는 아이는 무슨 죄냐”며 “낳지 않는 것이 곧 부성애”라고 말했다.
출산에 부정적인 여성들의 시각은 굳어져 가고 있다. 여성 응답자 중 ‘자녀를 가질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41.9%로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내 삶을 위해 자녀를 갖는 게 낫다’는 응답은 37.0%,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응답은 28.9%였다. ‘자녀를 가질 의향이 없다’(43.2%), ‘내 삶을 위해 자녀를 갖지 않는 게 낫다’(41.7%) ‘자녀를 반드시 가지지 않아도 된다’(66.9%)는 등 출산에 부정적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이는 결혼·출산에 따른 경력의 단절과 신체적 변화, 육아 부담 등을 더 크게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가정 양립 지원’ ‘영유아 돌봄서비스 지원’ 등 비경제적 지원책에 대한 필요성도 여성(16.8%, 11.9%)이 남성(3.3%, 6.5%)보다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거나 취업 등 경제적 책임은 남성이 져야 한다는 문화가 있고, 여성은 독박육아로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출생을 젠더적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부부와 가족 공동의 현실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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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男 “주거·일자리 우선” 女 “일·가정 양립, 돌봄 지원도”
한편, 설문조사에 응한 20·30대 남녀는 출산율 증가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으로 공히 ‘신혼부부 또는 출산 가구 주거 지원’(남성 33.7%, 여성 23.6%) ‘안정적인 청년 일자리 확보’(남성 29.7%, 여성 24.1%) ‘출산 및 양육 비용 지원’(남성 19.8%, 여성 19.1%) 등 경제적 지원을 꼽았다.
전문가들도 노동시장의 왜곡을 저출생 심화의 구조적 원인으로 꼽고 있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해 노동시간이 길고 시간대비 임금이 낮으며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격차가 심한 이중화된 노동구조를 보이고 있다. 생계·생존이 가능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결혼·출산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구조”라며 “20·30대의 출산율은 소득수준에 비례하는데, 청년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정부 지원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놔두고 0.78 타령"…뒤죽박죽 지원에 우는 부부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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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소씨가 시술 때마다 올리는 '난임 일기'. 건강보험 지원 횟수를 초과해 시술 10번째부터는 400만원 넘는 비용을 직접 마련했다고 한다. 사진 김미소씨
“경제적 부담감을 덜어준다면 난임 부부들이 이렇게까지 포기하진 않을 거예요.”
‘난임 브이로그’를 2019년부터 개인 유튜브에 올리며 난임 여성들과 소통해온 김미소(45·여)씨의 말이다. 현재 국내 난임 부부는 소득이나 나이에 따라 지원금을 다르게 지원받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횟수도 시술 종류별로 제한이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부터 정부의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이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지역별 혜택 격차가 생겼다. 김씨는 “‘난임방(난임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지역마다 다른 조건을 서로 비교하며 ‘부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지역마다 다른 지원에 난임 여성들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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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송파구 송파산모건강증진센터 난임지원 관련 상담부스 모습. 뉴스1
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은 2021년 기준 25만명에 이른다. 국내 난임 시술 환자는 2017년 1만2569명에서 2021년 14만3999명으로 최근 5년간 약 11.5배 뛰었다. 2021년 기준 연간 출생아 수(26만500명) 절반을 넘는 사람이 그해 아이를 갖고자 의료기관을 찾았다. 난임 시술은 한 번에 보통 150만~400만원이 들고, 비급여 약값 등도 있어 임신·출산을 위해 수백~수천만 원이 깨지는 건 예삿일이라고 한다. 난임 부부들은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에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을 위한 지원이 더 두터워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는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소득 기준과 시술 간 칸막이 폐지를 골자로 한 ‘난임 지원 확대계획’을 지난 8일 발표했다. 이후 난임 여성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나 카페 등에선 “혜택 때문에라도 서울로 이사하고 싶다” “동네로 차별받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인천에 사는 40대 난임 여성 신모씨는 “소득 제한에 걸려 지원을 못 받아 포기하는 부부가 정말 많다. 이런 지원은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씨에 따르면 지원을 받기 위해 일부러 휴직하는 난임 부부도 주변에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재 건강보험 적용 후 본인부담금 중 20만~110만원을 지원하는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중위소득 180% 이하(올해 2인 가족 기준 세전 월 622만원 이하)여야 지원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맞벌이 부부라면 이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며 소득 기준을 폐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30대 김모(여)씨는 “둘이 벌다보니 소득 기준을 넘어선다는 이유로 지원을 한푼도 받지 못했고, 난임 시술에만 1000만원 넘는 돈을 써야했다”라고 털어놨다. 앞으로는 같은 수도권이라고 해도 사는 지역에 따라 난임 부부가 받는 혜택은 달라진다는 얘기다.
“젊은 사람만 낳으라는 거냐” 울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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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사진 셔터스톡
시술별 횟수 제한도 지역마다 다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난임 시술 횟수(5~10회)가 정해져 있는데, 광주광역시는 2021년 1월부터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횟수를 다 소진한 부부에게도 연 최대 4회까지 난임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40대 난임 여성 임모씨는 “나이가 많은 만큼 임신이 어려워 자연스레 시술 횟수도 늘어나는데, 횟수 제한을 두는 것은 젊은 사람만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에 사는 40대 여성 김모씨는 “연 4회 지원으로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하지만, 주로 채취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이 지원 횟수를 이미 초과했다. 시술비가 너무 많이 들어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난임가족연합회 관계자는 “난임 부부는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기에 이들에 대한 지원은 다른 어떤 저출산 대책보다 효과적”이라며 “서울시 대책은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덕본 대구대 난임연구소 소장(대구대 생명공학과 교수)은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이 지난해 1월 지방 이양 사업이 됐지만 인구 정책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며 “소득 기준이나 시술별 횟수 폐지 등 정부에서 관심 가지지 못한 부분을 지자체가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