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쓰고 ‘지옥철’ 오명 못 벗는 지하철 9호선...‘제2, 제3 일산대교 사태’ 막으려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촉발 시킨 일산대교 무료화 논란은 30조원 가량의 민간투자 자금을 유치해 각종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려고 했던 한국판 뉴딜 사업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민자사업에 대한 정책 신뢰성에 타격이 갔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 대선 후보가 현 정부의 핵심 사업에 제동을 거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도 법에 맞는 절차와 사업자에 대한 보상 없이 이뤄진 통행료 무료 조치가 주식회사 일산대교의 가처분 신청으로 20일만에 무효화되면서, 혼란만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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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각종 민자 유료도로들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가 움트고 있어, 제2의 일산대교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 상황을 그대로 둔 채 대대적인 새로운 민자 유치를 선언하는 것이 정부만의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발비가 부족할 땐 민간자금을 유치하고, 이후에는 계약을 조정하는 것이 시장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19일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전화통화에서 일산대교 사태에 대해 “일산대교 주식회사가 생긴 2002년에는 이 사업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인지, 겨우 손해만 면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초과 이익이 있다면 이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사업자의 정당한 대가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민자사업은 시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산대교 무료화 해프닝처럼 지자체가 뒤늦게 ‘계약을 변경해야 겠다’고 나온다면,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로 각종 인프라 구축을 하려는 정부의 구상은 실행할 수 없게 된다. 이 교수는 “경제 성장을 위해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기업가들에 자금을 공급하는 자본시장의 역할이 움츠러들 수 있다”며 “그 자본시장의 핵심은 투자자보호, 즉 계약의 존중”이라고 지적했다.
◇적자 못견딘 지자체, 민간에 계약 변경 요구
개통 이후 지자체가 손해를 견딜 수 없다며 민간 사업자에게 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사례는 민자 사업으로 만들어진 도로와 철도에서 크고 작게 발생하고 있다. 2006년 개통한 미시령터널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있는 미시령터널은 최근 강원도와 계약 변경을 놓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될 전망이다. 사업재구조화를 위한 강원도의 수익률 조정 요구를 국민연금이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계약 방식을 운영수익을 보장하는 최소운영수익보장(MRG)가 아닌 최소비용보전(MCC)로 계약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터널 개통 후 2018년까지 240억 원이 넘는 돈을 미시령동서관통도로에 지급했다.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미시령터널의 통행량이 크게 줄었고, 결국 MRG 계약에 따라 강원도가 부족분을 지급하고 있다. 통행량이 줄면서 2019년 손실보전금은 129억원으로 증가했고, 강원도는 이를 연말까지 협상에 성공하면 주겠다며 지급하지 않는 상태다. 강원도는 민자 운영기간이 끝나는 2036년까지 누적 지급액이 3582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정은 서울 지하철 9호선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2년 민간 사업자인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누적 적자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9호선 요금 인상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위반으로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하겠다며 운임 인상을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에는 사업자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2013년 서울시와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사업재구조화를 통해 MRG 대신 MCC를 적용하고 요금결정권을 회수하는 내용의 변경실시협약을 체결했다.
그럼에도 지하철 9호선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 수천억원의 돈을 민간사업자에게 쓰고 있다. 송아랑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지하철 9호선은 2013년 변경실시협약 체결 이후 2021년까지 8년간 총 5154억원, 연평균 644억원에 달하는 서울시 재정을 민간사업자에게 지원했다. 이렇게 재정을 쓰면서도 혼잡도가 높아 ‘지옥철’로 불리며 시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올해로 개통 10주년을 맞은 부산-김해 간 광역도시철도인 부산김해경전철은 이미 지난 2017년 민간 사업자와의 사업 재구조화를 위한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김해시가 민간 사업자에게 낸 돈은 3145억원이다. 그나마 지난 2017년 MRG에서 MCC로 계약을 변경해 재정부담액이 2041년까지 1조7963억원, 연간 718억원에서 1조4919억원, 연간 597억원으로 낮아졌지만, 이는 김해시 재정에 극심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는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인한 것이었다. 김해경전철은 개통 당시 하루 평균 17만명, 사업 10년차에 27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지난해 하루 탑승객 평균 인원은 3만4752명에 불과했다. 건설 당시 추정한 승객 수에 크게 못미치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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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정부, 30조 민자 사업 추진... “민자는 악, 공공은 선 아냐”
문제는 정부가 민자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제 2의 일산대교’ 사태가 우려되는 곳이 많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산적한데 민자 사업을 대책없이 늘려도 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바에 따르면, 전국 시·도별 지방자치단체의 민자유료도로는 총 30곳이다. 부산광역시 7곳, 경기도 6곳, 서울시·인천시·광주시·경상남도에 각각 3곳이 있다. 이들 도로는 크고 작은 분쟁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분쟁 중인 선례가 많음에도 정부가 민자 사업을 활성화하려는 것은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풍부한 민간 자금을 활용해 비교적 적은 국가재정을 투입해 인프라를 지을 수 있고, 나라에서 짓는 것보다 공사 기간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늘어난 민간의 유동성을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게 하는 대신 인프라 투자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한국판 뉴딜 등 정부가 앞으로 민자사업을 계속 확대하기 위해서는, 일산대교 사태처럼 민자 개발은 악, 국가 개발은 선이라는 프레임을 조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계약상의 조건이 추후에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바뀐다면, 행정 일관성·신뢰성을 잃게 된다”며 “일부 정치인들이 민자 개발은 마치 범죄시하고 폭리를 취하는 방식이고, 공영개발만이 선인 척 여론을 몰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자 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흑백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민간과 공공이 함께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에,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유리한 방식으로 흘러갈 수없도록 견제장치를 둬서 보완하면 된다”며 “미국의 나사를 보면 우주 개발 초기에 기술을 개발해 민간에 이전했고, 그걸 바탕으로 스페이스X 등 민간 우주선이 발사될 수 있었다. 민간과 공공의 협력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